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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Mar 21. 2024

수퍼 히어로 따위는 필요 없다

내가 시작하는 아침이 평소와 달라 많이 놀랐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경험이라 이것이 처음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갔을 때 세면대 위에 길게 달려 있는 전등이 켜지지 않았다. 화장실에 불이 켜지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어 당황했었다. 나는 샤워부스 구석에 있는 작은 불빛에 의지해야 했는데 이것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잊고 지내던 어릴 적 시골 화장실을 생각나게 했다. 최신의 시설을 갖춘 아파트에서 그때의 기억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내가 살았던 곳은 양옥집이었지만 화장실이 대문과 가까운 바깥에 있었다. 그곳에는 작고 어두운 전등이 창 위에 달려 있었다. 전등 하나가 화장실과 출입구를 비추는 구조로 되어 있어 밤이면 가로등 역할을 했다. 이렇듯 하나를 나누어 쓰다 보니 불편하고 어두웠지만 그때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하나로 많은 것을 해결했다. 지금은 전등을 하나만 사용하거나 하나를 나누어 쓰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수퍼 히어로의 모습도 전등과 비슷한 것 같다. 수퍼 히어로 역시도 이젠 세상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수퍼 히어로가 되는데 엄격한 기준이 있었고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어야 했다. 하늘을 날거나 괴력으로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것이 되는데 자격 요건이 사라진 듯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 막강한 힘과 초능력보다 적과 맞서 싸울 자신만 있으면 된다. 나는 지금의 자유로운 방식이 좋다. 그리고 히어로의 평범한 모습이 좋다. 수퍼 히어로라면 민망하고 과하게 보이는 원색의 수트나 몸에 달라붙는 타이즈를 입고 얼굴도 가려야 하지만 이젠 이것도 필요 없다. 신분을 숨기지 않아도 되니 직업도 자유롭게 얻을 수 있다. 그저 누구나 용기만 있으면 수퍼 히어로가 될 수가 있다.


기다리던 홈페이지의 시안이 나왔다. 오후 일을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안내 메시지가 도착했는데 이것을 보니 마음이 설렜다.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하는 기대감으로 나는 서둘러 파일을 열어 확인을 했다. 겨울의 초입에 시작했던 일이 이제야 조금씩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홈페이지 제작업체와 미팅을 하면서 홈페이지에 필요한 디자인 가이드를 만들어 전달했다. 이것은 내가 만들고 싶은 건축 홈페이지의 컨셉과 디자인을 설명하는 자료로 나는 꽤 긴 시간을 들여 이것을 만들었다. 이렇게 공들인 것이지만 디자이너에게는 내가 만든 가이드에 얽매이지 말 것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디자이너에게 자유롭게 바꾸고 제안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한 주문이 쉽지 않은 것임에도 디자이너는 놀랄 정도로 이것을 잘 해결해 주었다. 나중에 통화할 일이 있어 이것에 고맙고 고생 많았다고 말하자 해당 디자이너는 재미있게 일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나는 어떤 것도 손대지 않고 그의 제안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4개월 가까운 시간동안 내가 만들고 싶은 홈페이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많은 시도를 했다. 그러면서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고 디자인하면서 여러 번 수정을 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많이 해본 상황에서 내 것에 만족하거나 내가 만든 것을 계속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내 것에 더해 젊고 감각 있는 디자이너의 생각을 더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것을 더 큰 도전으로 대하고 싶었다. 


나는 홈페이지를 다르게 만들려 많이 노력했다. 편의상 나는 이것을 건축 홈페이지라 부르고는 있지만 사실은 디자인과 트렌드에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많이 공들인 부분은 황금비율이다. 과장이지만 콘텐츠를 예술로 승화시켜 보고 싶었다. 나는 황금비율을 사용해 대상을 예술로 감상하고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홈페이지의 모든 배치를 1:1,618에 맞추고 텍스트의 레이아웃도 같은 방식으로 배치하면서 미적이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나의 홈페이지에는 ‘사진 촬영 금지’ ‘손대지 마시요’같은 ‘무단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지 않을 예정이다. 나는 홈페이지에 한계를 두는 대신 즐김의 대상으로 대하고 싶다. 


이제 한달의 시간이 지나면 나의 건축 홈페이지가 완성된다. 이것으로 나의 작은 전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 정말 나의 건축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곳을 건축을 즐길 수 있는 놀이터로 만들고 싶다. 그러면서 각자가 좋아하는 취향을 찾아 여행하게 하고 싶다.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우리의 집에 대한 본능과 욕구를 일깨워 주고 싶다. 이렇듯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건축을 수영하며 여기서 맘껏 고래처럼 꿈꾸고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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