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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Mar 07. 2024

한가지에 빠져 지체하지 않는다

52세에 시작하는 자기 계획서

서울리빙디자인페어 2024를 보기 위해 코엑스를 다녀왔다. 코엑스 전시관은 오랜만에 가보는 것이라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킨텍스가 생기고부터는 이쪽을 들르는 일 또한 적어졌다. 내가 코엑스를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때부터였다.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코엑스는 최신의 것을 접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전시회를 빠뜨리지 않고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때는 모든 것에 발 품을 팔아 했고 이렇게 얻은 자료는 그 무게만큼이나 우리를 기쁘게 했다. 이것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전시를 보는 내내 나는 기분이 좋았다.


 전시장을 나와서는 영풍문고에 들러 신간을 둘러보았다.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게 되면서 서점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어 이것을 다시 예전으로 돌려 놓고 싶다는 생각에 얼마전부터 틈나는 대로 서점을 찾고 있다. 쉽게 하던 방식에서 좀 더 몸을 쓰기로 한 것이다. 그 사이 브랜드에 관한 책들이 많아진 것 같다. ‘당신의 브랜드는 브랜드가 아닐 수 있다’ ‘마케터의 브랜드 탐색법’ ‘로컬의 신’ 같은 브랜드에 관한 책과 이러한 스타일의 글이 많아지는 게 나는 좋다. ‘이게 요즘 트렌드예요. 따라오세요’ 하지 않고, ‘여기요, 이런 것도 있어요, 이젠 달라도 괜찮아요’하고 말하는 것 같아 좋다. 취향과 안목 그리고 감성에 대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것 같아 좋다. 


신간 구경을 마치고는 그곳에서 다이어리를 하나 샀다. 미리 봐 두었던 것이 있어 그것을 골랐다. 큰 아이에게는 몇 년 전부터 새해 선물로 주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작은 아이에게 주고 싶어 따로 구입하게 되었다. 비싼 다이어리가 더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사용하는 시간만큼은 값어치 있는 생각들로 채웠으면 하는 바램으로 괜찮은 브랜드를 선택했다. 쓸모를 따지면 다이어리를 좀 더 일찍 선물해야 하지만 그의 새출발에 맞추고 싶은 생각에 그 시기를 미루게 되었다. 학교와 전공을 바꾸고 싶다며 반수를 시작했는데 얼마전 결과가 나오면서 그의 입학에 맞추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우리는 여기에 개성과 취향을 담는다. 그래서 세상에는 똑 같은 시간은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 역시도 서로 다른 취향들로 채워진다. 나의 경우에는 공란에 날짜만 적힌 심플한 디자인을 골라 사용하는데 달력의 종류도 참 많은 것 같다. 브랜드가 만든 멋지고 유니크한 달력이 있는가 하면 캐릭터로 채워진 예쁜 달력도 있고 멋진 사진들이 들어있는 달력도 있다. 작은 차이인 것 같지만 누구에게는 달력이 하루의 시작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하루의 완성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그림 같은 하루를 꿈꾸고 또 어떤 사람은 손으로 빼곡히 적어 넣는 것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무형으로 존재하는 시간이지만 자신의 취향으로 만들고 가꾸고 편집할 수 있는 것이 달력이 가진 무한의 매력인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등산을 가려 한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주말마다 갔던 곳이지만 급한 일이 많아지고 눈과 비까지 많이 오면서 가는 것을 미루게 되었다. 2시간 가까이 산을 오르면 단절되고 끊어진 생각과 고민이 풀리고 연결되는 마술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데도 나는 겨울동안 등산을 가지 않았다. 이것은 일에 대한 조급함 때문이었다. 일에 한번 빠지면 손을 놓지 못하게 되면서 다른 여러 일정들이 미뤄지거나 취소되기도 했다. 분명 아침에 일어나서는 ‘오늘은 산에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홈페이지를 배우고 만드는 일은 예상보다 어려웠고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래서 처음엔10분만 더하고 가야지 하던 것이 시간을 계속 넘기면서 그대로 날이 어두워졌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렇다 보니 병원도 병원문을 닫는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갈 수 있었고 몇 번은 일 삼매경에 빠져 진료시간을 놓치기도 했다. 버스를 탈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에 빠져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제때 내리지 못해 몇 정거장 다음에 내리기도 하고 종점까지 간 적도 있었다. 매일 하던 독서도 마찬가지로 못 한지 오래된 것 같다. 홈페이지 만들기가 1순위가 되면서 다른 많은 것들이 뒤로 밀리거나 취소되었다.


3월부터는 이것을 원래로 돌려 놓기로 했다. 중요하게 생각하던 일의 순위를 뒤로 미루기로 한 것이다. 이제 일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줄이고 그동안 홈페이지를 만든다며 미루거나 못한 일들을 챙겨 볼 생각이다. 한가지에 너무 깊이 빠져 지내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점검이 필요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꿔야 하는데 지금이 그 시기인 것 같다. 그리고 시간에 맞추어 시작하는 습관도 이번 기회에 바꾸어 보고 싶다. 계획보다 1시간 빨리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산에 가는 것도 원래 시간보다 1시간 빨리 출발해 보려 한다. 또 오랜만에 가는 것이니 천천히 그리고 여유 있게 다녀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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