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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Feb 29. 2024

순도, 자기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52세에 시작하는 자기 계획서

광주비엔날레를 위해 만들었던 작품의 전시가 모두 끝나면서 전시 담당자로부터 작품을 가져가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에 출품을 하기 위해 바쁘게 일했던 기억이 났다. 비엔날레의 작품 준비는 개인이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지만 전체 작품의 구성과 짜임새를 위해 팀을 이뤄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 함께 작품을 만들었던 동료가 퇴사를 하면서 내가 대신 그의 작품을 챙겨 주게 되었다. 에어 캡을 넉넉히 받아 그가 그린 캔버스를 포장했다. 그가 작년 퇴사를 했을 때는 연락도 자주하며 안부를 물었지만 해가 바뀌고는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 일을 기회로 그를 만나게 되었다.


핑계 같지만 그와 연락이 뜸해진 미안한 마음에서였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내려 놓고 자신이 계획한 일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데 내가 자주 물으면서 상대를 자꾸 재촉하게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막상 그를 만난다고 하니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기분은 어색했다. 그는 프리랜서 기획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처음 찾아간 곳임에도 그의 작업실은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가 광주비엔날레를 위해 여러 해 동안 해오던 작품들이 작업실 하얀 벽을 따라 줄지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그가 그동안 손으로 해오던 작업을 디지털로 바꾸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고양이와 앵무새를 주제로 준비하고 있는 글과 그림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작년 여름 전주 성모안식성당에서 벽화를 그리는 일에 참가했는데 그때 교수님을 알게 되면서 조만간 그리스로 단기 연수를 떠난다고 했다. 새로운 일을 대하는 그의 노력이 멋있어 보였다. 그는 성격도 그렇고 일하는 스타일도 나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내가 일을 추진력 있게 진행하지 못하는데 비해 그가 모르는 것을 찾아 배우고 스스로 해 나가는 것을 보면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가 어려운 결정을 한만큼 좋은 성과를 얻기를 바란다.


나는 해외를 여행할 때면 건축을 보기 위해 성당과 교회를 들린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명동성당, 성모마리아 대성당 그리고 전동성당을 갔을 때는 미사 시간과 겹치면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을 멀찌감치 바깥에서 보고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얼마전 성모안식성당을 찾았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미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토요일 점심시간이라 성당 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못 보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는 운 좋게 성당의 벽화를 볼 수 있었다. 성당 한쪽에서 조용히 청소하시는 분이 계셔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말씀을 드렸는데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분은 이야기를 듣고는 사무실에서 열쇠를 가져와 성당의 문을 열어 주셨다. 청소를 하시던 분이 신부님이셨고 신부님은 성당과 벽화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을 주셨다. 그리고 편하게 구경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게 자리를 비워주시기까지 했다. 이것은 성당에서 벽화를 보고 온 것이 아닌 큰 대접을 받은 것 같았다.


“결과에 치중하던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이제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고 감사하기로 했다.”


홈페이지 제작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홈페이지 제작을 맡기고 몇 주가 지나면서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해지던 차에 디자인 담당자에게 연락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홈페이지 시안이 나올 날이 가까워지면서 걱정도 많아졌다. 내가 홈페이지 제작에 필요한 자료는 잘 전달했는지, 중요한 걸 빠뜨리진 않았는지, 또 최종적으로 협의된 내용에는 문제는 없는지 궁금증과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다행히 몇 개의 이미지에 대해 원본 파일을 요청한 것이어서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이제 몇 주의 시간이 지나면 홈페이지의 시안이 나온다. 물론 홈페이지가 완성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벌써 경기가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의 홈페이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작게 시작하는 홈페이지지만 나는 여기에 작지 않은 바램으로 채워 볼 생각이다. 나는 나의 건축 홈페이지를 내 자리에 있는 작은 어항처럼 만들고 가꾸어 볼 생각이다. 몇 년 전 지인에게 받은 원기둥 모양의 작은 유리 어항에는 구피와 수초가 예쁘게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이것의 재미만큼은 결코 작지가 않다. 내가 사무실에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스탠드를 켜고 물고기의 밥을 주는 일이고 쉴 때 역시도 이것에 빠져 지내곤 한다. 그만큼 어항 속은 신기함으로 가득하다. 작게 시작한 것이지만 해를 넘기면서 물고기는 여러 마리로 늘었고 수초도 자라 예쁜 공간이 되었다. 작은 어항에서 서로가 경쟁할 것 같지만 모두가 같이 놀고 잠도 같이 잔다. 작은 것에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나 또한 이런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 크기가 목표가 아닌 작은 것에서 만들어지고 갖춰지는 소박한 공간이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남과 같은 꿈을 쫓거나 남을 똑같이 따라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가는 것으로 앞으로의 과정을 즐기려 한다. 작은 어항을 예쁘게 꾸미듯 나의 홈페이지 또한 세상에서 작은 꿈들을 키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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