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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Feb 15. 2024

영화와 다른 사랑을 꿈꾼다

52세에 시작하는 자기 계획서

나는 고등어 반찬을 좋아한다. 그것도 많이 좋아한다. 그래서 식당에 가서 고등어가 반찬으로 나오면 나와 친한 사람은 이것을 먹기 좋게 말없이 내 앞으로 갖다 놓아줄 때가 있다. 내가 고등어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거나 행동한 적은 없지만 상대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유심히 봐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 이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이젠 고등어가 힐링 푸드가 되었다. 내가 고등어로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고등어 때문에 심하게는 아니지만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건강검진을 받느라 점심 시간이 지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고등어를 먹겠다고 미리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찾아간 식당에 마침 고등어 구이가 메뉴에 있어 나는 기분 좋게 이것을 주문을 했다. 그리고는 고등어와 엮인 가까운 사람들을 추억하며 식사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려서 나온 음식에 고등어가 없었다. 고등어 정식에 고등어가 빠진 것이다. 이어 일찍 품절이 되어 고등어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문할 때 미리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빠진 고등어를 대신해 다른 메뉴가 나온 것도 아니어서 나는 ‘이건 뭐지?’하고 내 눈을 의심하며 식사를 해야 했다. 그냥 먹기는 했지만 힐링은 커녕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은 멍해져 갔다. 고등어로 괜하게 설레었던 마음을 달래야 했다.


나의 한주도 이처럼 고등어 구이가 빠진 고등어 정식 같이 보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홈페이지 만드는 것을 업체 전문가에게 맡기고 보내는 첫 주였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이상하게 무언가 빠진 듯 느껴졌다. 나는 홈페이지를 워드프레스가 아닌 다른 제작툴로 만들게 되면서 새로운 메뉴가 되었고, 업체 역시도 일반적인 홈페이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만들게 되면서 새로운 메뉴를 준비해야 했다. 이렇듯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 만큼 우리는 이것을 조정하고 줄이는 노력을 같이 해야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크고 화려한 것을 추종하는 것이 아닌 작게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시소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소에 앉으면 내가 높이 올라갈지 아니면 낮게 내려갈지 모르는 그런 상태 말이다. 한번 높이 올라가면 다시 아래로 쑥 내려가고 또 아래로 내려 갔다 가도 위로 쑥 올라가는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일을 새롭게 시작했는데 이것이 순조롭거나 마음이 편안하다면 정상이 아닐 것이다. 처음해보는 일과 혼자서 하는 일이 쉽거나 순조롭다면 이것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거나 과거의 방식으로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모순되게 일이 순조롭고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 해보지 않고 모르는 일을 하면서 쉬운 것을 찾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순조롭지 않기를 바라고 외쳐야 한다. 그러면서 파도처럼 움직이는 시소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조너선 글레이저(Jonathan Glazer, 1965년~) 감독이 2004년 만든 영화 ‘탄생(Birth)’은 세드엔딩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영화는 10년전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주인공 애나 앞에 10살의 어린 소년 션이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나타난 소년은 자신이 죽은 남편이라 고백하지만 누구도 그가 남편의 환생임을 믿지 않는다. 에나 역시도 그의 말을 믿지 않지만 서서히 이것이 믿음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애나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나는 슬프게 끝나는 영화를 보며 이것이 해피엔딩이 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두번째 사랑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래고 또 바랬다.


그런데 시간이지나 이것이 세드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임을 알게 되었다. 션은 자신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애나를 놓아줄 수 있었기에 해피엔딩이고 주인공 애나 역시 그가 바라는 사랑을 찾게 해주어 해피엔딩이다. 영화는 마치 환생을 다루는 것 같지만 사랑에 대한 정의를 다시 묻는 것 같다. 나는 나중에서야 두가지 사랑 모두 똑 같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루어지는 사랑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도 똑같이 아름답고 소중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부족하거나 작게 사랑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오늘 다시 이 영화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영화는 내게 어떤 사랑을 꿈꾸고 있는지를 물었고 해피엔딩을 원하는지를 물어 왔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10년전 꿈으로 대답했다. 10년전 꿈이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내게 역주행을 제안해 온다면 나는 이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나는 꿈을 찾아 새로운 모험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누구의 것과도 닮지 않은 해피엔딩과 사랑을 만들고 싶다. 꿈에 대해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이것에 빠지는 것 보다 더 좋은 사랑이 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만큼이나 흔들림 없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영화와 다른 사랑이길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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