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꺼삐 주식회사>
베를린의 센트럴파크라 불리는 티어가르텐(Großer Tiergarten) 공원과 베를린 동물원(Zoo Berlin)이 도심에 있어 나는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호텔 창밖으로 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그곳을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내가 찾은 곳은 베를린 동물원 호텔(Hotel Zoo Berlin)’이었다. 그러자 동물원이란 특이한 이름 때문인지 평범할 것 같았던 나의 여행이 모험처럼 느껴졌다.
호텔의 커다란 출입구가 열리면 초록의 카펫 위에 표범이 거니는 모습이 펼쳐져 있고, 로비에는 멀리 이국에서 가져온듯한 가구와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객실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얼룩말 무늬를 연상시키는 카펫과 동물들을 모티브로 그린 일러스트들이 벽을 따라 걸려 있다. 레스토랑에는 케이지에 담긴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초록의 가죽과 패브릭의 의자들이 멋스럽게 놓여져 있다. 이렇게 클래식한 분위기의 호텔이 저녁이면 파티장으로 변신해 화려함을 뽐낸다. 호텔의 이런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조합과 야생의 모습은 내가 만난 베를린과도 많이 닮아 보였다.
베를린은 과거 프로이센 왕국부터 베를린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동독과 통일의 역사를 거치며 진행된 야심 찬 건설 프로젝트들이 도시 건축의 특징을 만들어 냈다. 내가 찾은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은 베를린의 중심이 되는 거리로 정치, 예술, 문화를 대표하는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파리 광장을 시작으로 동독시절 첫번째 세워진 러시아 대사관(구소련 대사관)과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베를린 코미셰 오페라 극장, 그리고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설립하고 학문의 요람으로 손꼽히는 베를린 주립 도서관(베를린 왕립 도서관)과 자유주의 교육을 목적으로 빌 헬름 폰 훔볼트가 세운 베를린 훔볼트 대학을 차례로 마주할 수 있다.
베를린은 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라는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건축에 시대의 바램과 염원이 담기듯 베를린은 이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건축 도시로 만들었다. 이것은 이곳의 건축이 과거부터 증축과 개축되고 또 필요에 따라 철거되었다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베를린의 건축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것이 아닌 건축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 것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나는 베를린 여행에서 여러 우연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중 첫번째는 아이콘(Icon) 전시였다. 나는 운터 덴 린덴 거리에서 시대를 초월한 여행, 문화 사회 자동차(A Timeless Journey of Culture, Society and Mobility)를 타이틀로 열린 기획전과 우연히 마주쳤다.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동서의 두 국가가 사상과 우월을 가리는 경쟁을 펼쳤는데 그중 둘의 가르는 명확한 기준이 된 건 아이콘이었다. 이 둘의 경쟁은 서독의 폭스바겐 비틀과 동독의 트라반트 601의 경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서독인 폭스바겐 비틀의 압승으로 통일 후 시대에 뒤쳐진 동독의 트라반트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트라반트가 디자인과 성능이 뒤진다고 해서 가치가 없다거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라진 아이콘에도 향수가 담기면서 이것의 흔적을 그리워한다.
우리는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정의할 수는 있어도 이것이 없어지고 사라지는데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우리 곁에서 호흡하는 것일 때는 더 그렇다. 암펠만(Ampelmann)은 동독시절 만들어진 사람 모양의 신호등으로 사람들에게 친근함과 즐거움을 주었지만 통일이 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이것을 지키면서 암펠만은 베를린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암펠프라우(Ampelfrau)라는 여성 신호등이 만들어지고 암펠만을 브랜드한 다양한 굿즈, 샵, 카페가 생겨났다. 현재 암펠만은 베를린과 독일 여러 곳에서 신호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암펠만이라는 아이콘은 이젠 베를린을 넘어 독일을 대표하고 있다. 나는 여행동안 암펠만 신호등을 따라 길을 건넜고 여러 암펠만 샵에 들어가 선물을 고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것만큼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은 찾기 힘들 것 같다.
이번 베를린 여행에서는 도로와 건물이 폐쇄되면서 많은 곳을 관람할 수 없었다. 미리 모든 것을 확인하고 간 것이 아니라 헛걸음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찾아간 곳 중에는 부분만 공개하거나 빨리 문을 닫아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의 감정도 안정을 찾으면서 이것에 수긍이 갔다. 지금은 이것을 볼 수 없지만 이것이 베를린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것은 건축이 지어져 목적에 맞게 쓰이다 새로운 용도로 변화하고 있는 과정으로 수술과 치료를 거쳐 건축이 새로운 삶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꿈을 꾸는 것처럼 베를린 역시 과거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변화를 이어가기 위해 미래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화려한 조각상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해하며 경이롭게 바라만 보기만 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우연찮게 조각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이것에 대한 그동안의 의문이 풀렸다. 모두가 같은 공정을 거치진 않겠지만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석고를 이용해 미리 모양을 만들고 수정과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이어 이것을 게이지를 이용해 대리석에 하나씩 옮겨 깎는 것으로 조각상을 만들어 갔다. 이렇게 수많은 반복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예술품으로 불리는 조각상이 완성되었다. 변화 역시도 같은 과정을 거쳐야 나오는 것이다. 조각상을 만드는 것처럼 치밀한 계획과 수많은 반복을 거치고 나서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긴 시간을 견뎌낸 것이 베를린과 베를린 건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