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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Jun 20. 2024

공원을 중심에 두고 떠나는 여행,베를린 03

<뚜꺼삐 주식회사>

나의 베를린 여행을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예전 같으면 중요한 걸 빠뜨린 게 없는지 확인하고 이것을 하는데 집중했다면 이번엔 이것을 바꾸어 보고 싶었다. 이번 여행을 공원에서 시작한 만큼 이것과 어울리는 마무리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부족한 건축 답사를 하며 바쁘게 마지막을 보내는 대신 공원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의 베를린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은 나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건축에 대해서도 나의 생각을 돌아보고 이전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생각이 더해지는 것으로 치우침과 편견이 사라지는 것과 같이, 건축에도 하나가 아닌 여러가지가 존중되고 공존해야 해야함을 느꼈다. 그리고 건축이 소실과 단절로 남겨지거나 기록되는 것이 아닌 이것에 우리의 꿈을 더해가며 어제를 기억하고 내일로 가져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베를린 중심에 있는 티어가르텐(Großer Tiergarten)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공원은 어떤 모습일까?’하는 궁금증에 더해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고 그립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갈래로 난 긴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고, 얕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 아침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가족끼리 줄을 지어 자전거를 타고, 팀을 이루어 달리는 모습을 벤치에 앉아 감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가지 상상을 빠져들었다. 이곳과 똑같은 공원이 한국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렇게 해서 바뀌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막연하게 해보는 상상이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이곳의 공원을 통째로 옮겨 놓는다고 해서 우리의 일상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떤 것이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쩌면 이것에 이 숲과 공원이 만들어진 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필요에 의해 많은 것들을 따라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바로 일상으로 가져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과 동일한 시간과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화려함은 누구에게나 부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내가 느낀 부러움은 그곳의 멋진 자동차도 화려한 건축도 아니었다. 이것은 자동차, 건축 그 근저에 깔려 있는 자전거 문화였다. 베를린에는 다양한 용도의 자전거가 거리를 누비는 것을 보았다. 학교와 사무실에 어울리는 자전거, 아이들을 태우고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전거, 여러 종류의 짐들을 싣고 다닐 수 있는 자전거 등 자전거의 용도도 모양도 가지가지다. 이 많은 자전거들을 포용하고 도로와 인도, 버스와 지하철 등이 만들어지면서 어디든 자유롭게 달릴 수 있다. 자전거가 인도와 도로로 함께 달리게 하면서 길과 도로 모두 사람, 자전거, 자동차에 공평하다.


이번 베를린 여행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나는 이것을 ‘기록’이라 표현하고 싶다. 강자에 의해 보여지는 세상에서 진실은 약자가 남기는 기록에 담겨 전해지기 때문이다. 진실이 사라지거나 변질되지 않게 나아가 지금의 잘못이 반복되지 않게 이들은 일상의 담담함을 묵묵하게 걸어 갔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결국 이들이 진심을 담아 걷고 남긴 발자국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베를린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를 걷다 마주친 베를린 장벽 위에 그려진 벽화 한 장이 기억에 남는다. ‘Many small people who in many small places do many small things that can alter the face of the world.’ ‘많은 작은 장소에 있는 많은 작은 사람들이 세상의 얼굴을 바꿀 많은 작은 일들을 한다.’라는 아프리카의 지혜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홀로코스트에서 수많은 작은 사람들은 이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화가인 베드피치 프리타(Bedfich Fritta)는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고 그곳의 생활과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을 그려 벽 속에 숨기면서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 시인인 이작 카체넬존(Jizhak Katzenelson)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시로 남겼다. 나치의 학살에서 유대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길 한 사람을 몰래 피신시켰다. 그는 붙잡히지만 죽기 전 아우슈비츠 수용소 마당에 시를 숨기면서 기록이 남겨져 발견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면 우리는 이것이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미래 역시도 다르게 바뀔 것이다.


기록은 염원이 담겨 미래로 이어진다. 우리 역시도 무거운 역사에 안중근과 신채호와 같은 소중한 기록이 있는 것에 감사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용히 독서등을 켜고 이번 여행을 회상하며 다짐해 본다. 기록하는 것으로 많은 작은 일들을 실천하며 살아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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