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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Jun 06. 2024

공원을 중심에 두고 떠나는 여행,
베를린 01

<뚜꺼삐 주식회사>

스테디셀러가 긴 시간에 걸쳐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데는 유행이 아닌 본질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번 다시 읽어도 감동이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스테디셀러와 같이 우리의 여행도 재미와 깊이가 더해지면 좋을 것 같다. 여행은 목적에 따라 그 내용과 재미가 달라지며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나는 여행을 할 때면 따로 시간을 내어 공원에 들르곤 한다. 이렇게 공원에서 휴식하거나 산책을 하면 잠깐이지만 현지인이 된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기분을 좀 더 즐겨 보고 싶어 이번에는 공원을 중심에 두고 여행을 하기로 했다. 공원이 있는 광장에서 여행을 시작해 공원과 가까운 호텔에 묵기로 했다. 이렇게 나의 베를린 여행은 파리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도시는 저마다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이것이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고정관념이 되기도 한다. 베를린은 후자인 것 같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가장 큰 도시지만 우리에게는 생소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고 역사적인 상징성까지 더해지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것 역시 많지가 않다. 그래서 베를린은 다르게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다.


베를린과 파리는 묘한 교차점을 가지고 있다. 그중 파리 광장(Pariser Platz)은 베를린의 역사와 변화의 과정을 담고 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앞에 있는 파리 광장은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어울리는 곳이지만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만들어지고 정작 이 문을 통과한 것은 나폴레옹 군대였다. 베를린을 침략했던 나폴레옹 군대가 패배하여 돌아간 것을 기념하여 광장을 조성하고 적국의 수도 이름을 붙였다. 이후에도 전쟁과 분단이라는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내가 파리 광장을 찾았을 때 주변 대부분이 펜스로 막혀 통제되고 있었다.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는 이곳에 특별한 행사가 맞물리면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하는 UEFA 유로 2024의 오픈이 가까워지면서 수도 베를린의 랜드마크인 이곳을 더욱 복잡하게 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압도하는 크기의 축구 골대가 문 뒤로 세워지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원에는 경기장과 같이 인조잔디가 깔렸다. 축구에 진심인 게 느껴졌다.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눈에 띄는 디자인의 조형물을 자주 만나게 된다. 마치 이곳의 TV를 보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광고를 보는 기분이다. 툭~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 듯 이것들이 놓인 위치와 장르, 디자인도 다양하다. 그래서 이것과 마주할 때면 놀라고 기분이 좋아진다. ‘누가 이것을 생각해 냈을까?’하는 부러운 궁금증도 생긴다. 이것을 시작하여 문화로 자리잡기까지 분명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 역시도 어쩌면 이곳의 융성, 파괴, 재건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롭게 만들어 낸 가치이자 유산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역사는 항상 무겁게 느껴진다. 화려하고 찬란했던 문화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것도 그러한데 슬픈 역사일때는 가히 이것의 무게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땅은 비극의 역사, 인종의 핍박과도 연결되어 있다. 베를린 도심 한복판 공원과 마주한 완만한 지형 위에 각기 다른 모양의 2,711개의 직육면체의 콘크리트를 하나되게 눕혀 놓으면서 무거운 침묵을 기억하게 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은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디자인했다건축가는 획일적으로 사라진 그들의 존재를 보여주려는 듯 메모리얼의 표면을 콘크리트로 디자인했고 들어내지 못한 그들의 이름과 바램은 기념관으로 만들어 지하에 남겨 놓았다


도시 주변에는 유대인 희생자 외에도 동성애자와 소수민족, 나치에 항거하거나 동독을 탈출하려다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고 있다. 그런데 이 또한 의도한 것 마냥 그들이 겪었던 방식으로 여기저기에 툭~하고 놓여져 우리를 놀라고 엄숙하게 한다. 이것에 건축가, 예술가, 디자이너를 참여시킴으로써 모두가 동감하고 위로할 수 있게 했다.


베를린의 연방의회 의사당은 우리의 국회의사당과 닮은 부분이 있다. 독일 제국의 대표 건축인 연방의회 의사당(Reichstag Building)은 건물의 상징성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된다. 이후 서독의 수도인 본에 새로 지어졌지만 독일이 통일되면서 다시 베를린으로 옮겨진다. 이렇게 의사당을 새롭게 재건하면서 옥상 돔을 유리로 바꾸고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게 된다. 유리 돔은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디자인한 것으로 내부를 회전하며 내려오는 산책로를 만들어 바깥으로는 베를린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안으로는 의회의 내부를 내려 볼 수 있게 했다.


우리의 국회의사당은 상징성을 위해 남산의 신궁을 허문 자리에 지으려 했다. 하지만 이것이 무산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다. 독립국가의 위상을 건축에 담고자 했지만 무리하게 설계를 변경하여 돔을 새로 올리면서 초기의 디자인과 많이 다른 모습이 되었다. 돔이 새롭게 만들어졌지만 건물의 웅장함에 집중하면서 별다른 기능이 없는 것이 아쉽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슈프레강을 따라 들어선 연방의회의 부속건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건축으로 독일의 건축가 슈테판 브라운펠스(Stephan Braunfels)가 디자인했다. 독일의 대표 정치가들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파울뢰베 하우스와 마리 엘리자베트 뤼더스 하우스는 각각 의회사무실과 의회도서관이 위치해 있다. 기하학적인 조형의 건축물을 강을 마주보게 놓고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아치모양의 다리로 연결시킨 것이 인상적이다. 건축에 디자인과 철학이 더해져 시민들로 북적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곳에서 하는 정치도 그리고 이곳의 정치를 지켜보는 것도 분명히 다르고 특별할 것 같이 느껴진다.


베를린은 결코 가벼운 도시가 아니다. 그래서 베를린 여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역사, 문화 그리고 인간을 돌아보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역사와 문화는 새롭게 재해석하고 더해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질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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