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시간과 함께 부활하는 건축

CONCEPT 손자병법_작은 것의 화려한 반란

by dkb 하우스

> CASE1: 다비드의 콧대를 세운 미켈란젤로


[Overview] ‘최대의 노력으로 최소의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합리적 성과를 지향하는 데는 위배되지만 이것은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이 여행인 것처럼, 예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예술의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선택과 행동에 있는 것입니다.


1502년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공사 현장에서 한 조각가의 실수로 거대한 대리석이 망쳐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 거대한 대리석을 되살리기 위해 피렌체 시장인 피에로 소데리니(Piere Soderini)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미술의 대가들까지도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리면서 대리석 원석은 교회의 외진 곳에 방치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친구의 편지를 통해 전달받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년 ~ 1564년)는 로마에서 달려왔고, 망쳐진 대리석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는 인물상의 포즈를 잘 선택한다면 가능하다고 결론 내리면서 다비드상을 조각할 수 있게 됩니다. 조각의 마지막 공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이 일을 허락한 시장 소데리니가 방문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조각되고 있던 다비드 상을 지켜보던 그가 조각상의 코가 너무 큰 것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는 그가 대형 조각상을 바로 밑에 서서 바라보게 되면서 전체 모습을 보지 못해서 생긴 문제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사실을 거론하지 않고 정중히 그를 아래쪽에 있는 작업대로 올라오게 하고는 조각칼과 대리석 가루를 한줌 집어 들고는 그가 말한대로 다비드의 코를 고치기 시작합니다. 조각칼이 소리 내며 신중하게 움직였고 이에 맞춰 대리석 가루가 떨어지면서 미켈란젤로는 분명 코를 다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침내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시장이 다시 볼 수 있게 옆으로 한걸음 물러서자, 시장은 만족의 웃음과 함께 조각상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코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고객의 심미적 안목을 존중함과 동시에 논쟁과 설득으로는 최고의 예술품으로 완성되지 않음을 간파한 미켈란젤로의 선택이었습니다. 코 모양을 손보면 조각상을 망칠 것을 알기에 상대가 바라는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미켈란젤로와 소데리니 나아가 관람자들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15.david-nose-detail.jpg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이 여행인 것처럼, 예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예술의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선택과 행동에 있는 것이다.


> CASE2: 오르세, 시간과 함께 부활하는 건축


[Overview] 감정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이모션(Emotion)은 움직인다는 뜻의 라틴어 모베레(Movere)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감정은 멈추거나 한가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자세와 자리를 바꿔가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뜀박질 같은 것입니다.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은 과거 오르세 역(Gare d’Orsay)이었던 건물을 프랑스 정부가 개조하여 19세기 인상주의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오르세는 시간의 흐름과 요청에 따라 변화를 꾀하면서 한 해 300만명 이상이 찾는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의 시초는 1810년대에 건축된 오르세궁(Palai’s d’Orsay)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 최고 행정 재판소와 회계 감사원으로 사용되다가 화재로 소실되면서 30년 가까이를 폐허의 상태로 보존됩니다. 1900년 5천만명의 파리 방문객을 유치하기 위한 만국박람회 장소와 가까운 곳에 새로운 기차역을 만들기로 하면서 오르세의 혁신이 시작됩니다.


오를레앙 철도 회사가 새로운 기차역을 짓기로 하지만 토지를 양도한 프랑스 정부가 내건 조건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차역이 철재로 지어지는 상황에서 오르세궁의 가치를 지키고자 외부에서 철재 구조물이 보이지 않을 것, 세느강에서 역이 바로 보이지 않을 것, 호텔과 같이 지어질 것과 같은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었습니다. 건축가 빅토르 라루(Victor Laloux)가 이 조건에 맞추어 설계하면서 오르세역은 주변의 우아한 풍광과 어울리는 현대적인 건축물로 탄생하게 됩니다. 오르세는 프랑스 남부를 잇는 최고의 네트워크와 호텔로 발전하게 되지만, 175미터의 짧은 플랫폼의 길이로 인해 장거리 운행의 한계에 부딪혔고 호텔이 문을 닫으면서 폐쇄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역이 가진 특수성으로 무용지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를 딛고 오르세는 1986년 미술관으로 재 탄생하게 됩니다. ACT 건축가 그룹이 디자인을 맡아 거대한 홀을 관람객의 동선으로 활용하고, 웅장한 유리 지붕과 어닝(Awning)을 어느 미술관도 가지지 못한 오르세 미술관만의 특징으로 사용하면서 변신에 성공합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2,500점의 전시물을 한곳에 전시하면서 세계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개관 25주년에 맞춰서는 오르세 미술관의 부활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걸고 전시공간 절반을 폐쇄하고 2년여의 리모델링을 시도합니다. 이 기간 미술관의 심장인 인상파 전시실을 새롭게 변신시키는데 오르세 미술관은 정부의 지원금 외에도 순회 전시를 통해 1100만 유로를 벌어들입니다. 오르세 미술관이 성취한 가장 큰 업적은 전시의 공백 없이 관람자가 작품을 감상을 할 수 있게 배려하며 부활한 것입니다.

15.musee-dorsay-1089183_1920.jpg 감정을 의미하는 이모션(Emotion)은 멈추거나 한가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자세와 자리를 바꿔가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뜀박질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