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들풀언덕 _ 부모와 살던 집을 기억으로 남기며
외삼촌의 장례는 작게 치러졌고 호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머니는 내가 빈소에 가는 것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을 고려해 외삼촌의 발인을 마친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경황에 안부를 물으면서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족 여행을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 여행 가고 싶으니 우리 계획 대로 가자‘며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괜찮겠냐는 나의 물음에 ‘그냥 있으면 우울할 거 같으니 복잡하고 사람 많은데 가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요리하는 걸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어머니는 큰 그릇을 이용해 음식의 양을 가늠하고 요리를 만들 때면 음식의 간을 보지 않는데도 맛은 물론 항상 먹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소신을 지키면서 생활하고 닥친 문제들도 원만히 해결하려 합니다. 뭉그적거리며 해결되지 않는 집안 일 또한 어머니의 통큰 결단으로 답을 찾기도 합니다. 우리는 1번 국도와 붙어 있는 밭에서 포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포도밭 바로 옆에 주유소가 들어서더니 차량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주유소를 확장한다는 얘기가 오갔습니다. 그러면서 포도밭을 주변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팔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농사를 계속 짓겠다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아버지는 진심을 말한 것이었지만, 주유소에서 우리 밭만 남기고 주변의 땅을 미리 사들였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다시는 제시된 가격에 팔 수 없다고 판단한 어머니는 포도밭을 아버지 모르게 매도해 버립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되면서 한바탕 소란이 나긴 했지만 결론은 어머니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옆집 버섯 농장에 보증을 섰던 게 잘못서면서 우리가 살던 집을 급히 내놓아야 했습니다. 새로 장만한 집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현실 앞에서 충격 때문인지 아버지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여기에 방법을 찾아 나섰고 동네에서 방치되어 오던 조그만 집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서울에 있는 가족과 살게 되면서 비워진 집인데 매도 시기를 놓치면서 집과 담은 쓰러지고 물이 마당에 가득 찬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오히려 이것을 손쉽게 매입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 것입니다. 돈의 융통이 어려워진 당시 상황을 고려해 동네에서 거래가 안되고 있는 숨어 있던 땅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서 건축일을 하는 아버지의 손을 빌려 집을 지면 되겠다는 어머니의 생각이 적중한 것입니다.
모든 일은 우리에게 중요한 경험과 가치의 기회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거치며 이겨낸 일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집 지을 땅에서 반듯하지 못한 땅을 정리하고 안쪽집이 다닐 수 있는 도로를 양보하고 나니 15평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급하지 않은 것은 나중에 구비하기로 했습니다. 물이 차지 않을 정도로 마당에는 흙을 채웠고, 최소 높이로만 화장실 타일을 붙였고, 페인트 칠을 하지 않은 상태로 우리는 이사를 했습니다. 나중에 마당에는 콘크리트 포장을 하고, 방을 증축하고 집 전체에 페인트칠하면서 현재의 집 다운 모습이 갖춰지게 됩니다. 우리 가족이 변화에 맞춰 살아온 것과 마찬가지로 집 이곳저곳은 지어진 시기가 다르다 보니 퍼즐과 같은 재미난 모양이 되었습니다. 40년이 다 되었으면서도 집의 모양만큼이나 불편함이 적은 것 또한 이 집만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