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마음이 편치 않으면 몸이 머물 수 없다

[에세이] 들풀언덕 _ 부모와 살던 집을 기억으로 남기며

by dkb 하우스

울릉도 크루즈를 타기 위해 찾아간 포항 영일만 신선착장은 이름이 말하듯 그곳은 새로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젠 기상 이변에도 결항없이 운행이 가능한 2천톤급의 선박을 들여오며 새로 지은 선착장과 매표소의 복잡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시간이 좀 걸려야 해결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는 자정이 되어 출발하는 배안에서 마주 앉아 맥주 한잔을 건배하며 길고 분주했던 하루를 달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 태양 너머로 바다 위로 차분하게 내려 앉은 울릉도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휴식과 여행에 딱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 울릉도를 창밖으로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우리는 하선 안내 방송에 맞춰 긴 줄을 따라 배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지인이 준비한 승합차를 타고는 붐비는 선착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인의 도움으로 울릉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즐거움과 편안함만 있는 기분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갖 좋은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선물만큼 아름답게 양쪽 모두를 기쁘고 설레게 만들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인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배려에 우리도 작지만 감사의 마음을 선물에 담아 전했습니다.


울릉도의 빼어난 경치는 찾는 곳마다 우리의 경탄을 연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경치에 대한 감탄과 함께 바위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항상 끝을 마무리했습니다. 좁은 섬의 지형 탓에 심한 경사면 아래에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걱정 하나씩은 있게 마련인데 울릉도에서 아버지는 바위 걱정을 연거푸 했습니다. “나는 여기에 살라고 해도 바위 떨어질까 무서워서 못살겠다.”며 가는 곳마다 손사래를 치며 넌지시 웃어 넘겼습니다. 처음 바위 얘기를 할 때는 별걱정을 다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지만 여러 번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우리까지 합세하여 바위 걱정을 하는 기이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울릉도의 산세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내가 살던 시골의 뒷산도 경사가 아주 심했었습니다. 이런 뒷산 바로 아래에 친구집이 있었는데 집채 크기의 바위가 집으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아름드리 참나무가 구르는 바위를 막아 세우면서 대형 사고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가족들은 집 바로 뒤 나무에 위험천만하게 걸쳐 서 있는 바위를 보며 매일매일을 지내야 했습니다. 거대한 바위를 치울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땅까지 젖어 약해지는 장마철에는 잠을 못 이루게 되면서 결국 그동안 살아온 집을 비우고 나와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이것을 감당하며 살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제주도에 예쁜집 한 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제주도의 땅값이 이미 많이 올라 울릉도로 여행 오면서 이곳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치로만 바라보며 대하던 이 아름다운 경관이 내가 살 곳이라 생각하고 시간을 들여서 보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적인 궁리를 하니 울릉도가 낭만적인 모습들 사이로 아버지가 했던 바위에 대한 걱정이 내 쪽을 향해 달려드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장미에서 가시를 발견한 듯한 현실과 마주한 것입니다.


우리는 울릉도의 신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신축 펜션에 머물렀습니다. 지인의 도움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데 대해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수산시장에 잠시 들러 야식거리를 챙겨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모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둘러 앉은 가족 앞에서 본인이 정리한 마음 속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외삼촌, 열심히 일만 하다 허무하게 죽는 거 보니 느낀 게 많아. 건강 안 좋은데 농사일에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아. 이제 농사일을 그만 하려고 해. 이번 여행 마치고 가면 바로 밭을 내 놓을 거야. 밭이 팔리면 농사도 없으니 시골에서 계속 살 이유가 없어 집도 정리할까 해. 그래도 되겠니?"하며 마음의 정리를 했습니다. 자식으로써 감사하기만 한 부모님의 용기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부모님의 새로운 인생의 2막이 울릉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