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들풀언덕 _ 부모와 살던 집을 기억으로 남기며
늦은 시간까지 부모님의 새로운 거취에 대해 나와 동생은 의견을 나누면서 좋은 방안을 한가지 찾을 수 있었습니다. 2년전 매물로 나온 동네 땅을 매입해 집을 새로 지면 좋겠다고 동생이 제안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계획이 무산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을 바꾸어 시내에 있는 땅에 동생 손으로 직접 집을 지어 드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지은 동네집에서 우리가 살았다면, 이에 대한 감사로 부모님이 노후를 보낼 집을 우리가 지어 드리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목표에 의미까지 더해지면서 동생의 생각과 꿈이 현실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지인이 우리 가족을 위해 준비한 아침식사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그를 따라 찾아간 식당에서는 메뉴와는 별도로 울릉도에서 채취한 자연산 미역으로 끓인 미역국을 생일에 맞춰 준비한 것입니다. “아버님, 늦었지만 팔순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어머님 생신도 같이 축하 드립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내년에도 울릉도에서 생신 보내면 좋겠네요.”하며 지인의 쩌렁쩌렁하게 반기는 목소리에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부모님의 생일을 타지에서 보내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여기에 마음이 놓였는지 바위산 바로 아래 위치한 식당에서의 식사였지만 이 시간 만큼은 바위가 떨어질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유 있게 돌아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가려는 우리 가족을 지인이 다시 막아 세웠습니다. 아직 배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몇 군데를 더 보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갈 곳에 미리 예약까지 해 놓은 터라 우리는 더는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찾아가게 된 곳은 2억짜리 소나무가 있는 집이었습니다. 울릉도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중턱에 있어 주민들만 조금 아는 장소라 했습니다. 수십년 전 집 주인의 아버지가 소나무 옆에 처음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불이 나서 집이 전소되었지만 가족과 소나무는 다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아들이 여기에 집을 새로 지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얼마전에는 육지에서 손님이 찾아와 소나무를 팔 것을 제안하면서 2억 소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큰 불에도 가족들이 다치지 않고 지금까지도 잘 지내는 것이 소나무에 특별한 기운 때문인 것 같아 팔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영험한 기운이 있으니 나무를 만지며 소원을 빌어 보라는 주인 아저씨의 고마운 제안에 우리 가족은 순서에 맞춰 서로의 건강과 주변의 건강을 기원하고 돌아 왔습니다.
포항으로 돌아오는 크루즈에는 입항과 다르게 울릉도에 사는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가족이 머무는 6인실 침실에도 할머니 한분이 같이 배정받았는데 병원 진료를 위해 딸네집으로 가는 길이라 했습니다. 할머니는 육지에서 살다가 이곳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울릉도에서 지냈지만, 나이가 들고 큰 수술까지 하게 되면서 포항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했습니다. 섬에 큰 병원이 없다 보니 겪어야 하는 불편함이었습니다.
이번 울릉도 여행은 많은 것들을 우리 가족에게 선물로 남겨주었습니다. 하루하루에 집중하며 급급하게 살아오던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공통의 것을 느끼게 했고, 부모님이 연세로 버거워하던 농사일에 마침표를 찍게 했으며, 그리고 집이라는 목적과 가치도 다시 짚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포항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 식사를 위해 여행의 마무리로 적당한 음식을 찾았는데 의외의 제안이 나와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것은 자장면이었습니다. 자장면은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아버지가 서울 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 퇴원을 할 때도 다른 맛난 것들을 다 싫다 하고 고른 메뉴이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비싸고 귀한 산해진미 보다도 진한 추억이 담긴 소박한 것이 최고를 이길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장면에 탕수육을 곁들이는 것으로 울릉도 가족 여행의 추억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고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