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들풀언덕 _ 부모와 살던 집을 기억으로 남기며
부모님 집이 팔리면서 새집이 완공될 때까지 새로운 집주인의 배려로 별채에서 머물기로 했지만 여러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별채에는 화장실은 딸려 있지만 주방이 없어 그 기간 식사가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자기 주방을 같이 쓰자는 새로운 집 주인의 쿨하고 호의 넘치는 제안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이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부모님은 잠깐이니 괜찮다는 입장이지만 가족들은 시간을 가지고 해결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집을 정리하면서 나의 물건이 있어 따로 모아 놓았으니 편한 시간에 찾아 찾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학창시절의 추억이 담긴 책이며 앨범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들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원래 계획보다 더 빨리 집을 비워주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이유인 즉, 3월에 이사를 하기로 했지만 이에 앞서 집의 수리와 인테리어를 하고 싶다는 부탁을 받고 이를 허락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서 나는 서둘러 주말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시골집 곳곳을 채우고 있던 물건들이 자기 자리를 잃게 되면서 이사짐이 되어 창고로 옮겨진 것을 보니 나는 마음은 서글퍼졌습니다. 얼마전까진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당연히 자기 자리를 그대로 지킬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것들이 창고에서 습기와 어둠에 파묻혀 있으니 생명력까지 사라진 듯했습니다. 부모님은 거의 빈집이 다된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정리하고 청소하는 한편 이사 소식을 듣고 틈틈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로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미리 예약해 놓은 시내 백숙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는 식사를 마치고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신축건물을 다 함께 둘러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이날 오전에는 부모님이 살게 될 3층의 콘크리트 타설을 막 끝낸 뒤였습니다. 현장은 가림막과 거푸집으로 둘러쳐져 건물의 형태를 현장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동생이 미리 사무실에서 도면을 펼쳐 집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엘리베이터가 놓이는 위치를 확인하고 널찍하고 시원하게 배치된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3층은 동생이 계획한대로 부모님을 위해 특별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집이 완공되기 전까지 부모님의 거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을 때, 최고의 답을 들고 나온 사람은 여동생이었습니다. 시내 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는 여동생이 부모님과 함께 살겠다며 나선 것입니다. 여동생이 고심하며 이런 결정을 미룬 데는 10년 가까이 돌보아 온 산들이라는 반려견 두 마리 때문이었습니다. 과거 산들이를 부모님 집에 몇 일 맡긴 적이 있는데 그때 아버지가 고생을 했는지 이후로 산들이와 살고 있는 여동생 아파트에 가는 걸 꺼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동생이 통 크게 양보를 하고 산들이가 지내는 곳을 방으로 옮기면서 아버지의 불편함을 줄여 보기로 한 것입니다. 부모님이 여동생의 아파트로 가서 지낸다고 불편함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부모님이 당면한 문제를 가족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신축 건물이 완공되면 부모님과 여동생이 같이 살 예정이라 입주 전에 문제를 미리 경험해 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어떤 불편함이 있을지를 미리 보고 필요하다면 새로 짓는 집의 디자인에도 이를 반영 헤 보자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