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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b 하우스 Aug 16. 2022

01. 당근마켓 하듯 퇴사를 하다

[에세이] 나는 퇴사에 실패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퇴사에 실패했습니다. 제2의 인생을 꿈꾸며 회사에서 탈출하였지만 결국 퇴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나의 퇴사는 우연한 기회로 동물원 우리 안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나의 퇴사는 불안하게 출발함으로써 안정감을 잃은 채 수직의 코스를 뛰어내리는 것과 다름없는 가혹함과 현실을 함께 대면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간은 우물 속에 앉아 꼼짝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바깥의 세계로 끄집어 내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인사팀의 전화를 받고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받았다는 인사팀 담당자의 말 한마디에 한순간 무너져 내렸고 그동안 힘들게 버티고 있던 짐의 무게에 한계가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인사팀 담당자에게 퇴사를 하겠다고 말하면서 1년 넘게 이어온 새로 온 후임과의 힘든 여정도 함께 끊어 버렸습니다.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나를 덮쳤습니다. 그렇게 실장님께 퇴사를 말씀드리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평소 퇴사를 생각하고 준비도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퇴사라는 출사표를 던지고 나서야 내가 이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절실하게 고민하거나 대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거래하듯 퇴사도 그렇게 해 버린 것입니다.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까지 마치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2시를 넘겼습니다. 갑자기 폭우가 되어 쏟아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찌푸린 하늘을 의식하며 나는 마지막 퇴근길을 서둘렀습니다. 그러고는 조금이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자 회사 정문에서 제일 먼저 출발하는 광역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복잡한 주변의 소음과 시끄러운 마음을 피하고자 이어폰을 꺼내 듣게 된 오디오 북에선 마침 ‘오십에 읽는 장자’의 끝부분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돌직구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아야 했습니다.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세상의 순리를 따르면 시끄러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말은 분명한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버스는 표류하듯 수면 위를 요동치며 달렸고 나는 집까지 가기 위해 여러 번 버스를 환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환승 때만큼은 비가 내리지 않아 행운에 신기함 마저 느꼈습니다.


  아내에게는 퇴사를 했다는 걸 이야기하지 못하고 미루다가 버스에 타고나서야 “일찍 들어 갈게.”하며 카톡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 아픈 게 아니냐며 걱정을 하는 통에 그제서야 “미안해, 나 회사 그만 다니려고 해.”하며 사실을 틀어 놓았습니다. 퇴사라는 현실의 벽이 철벽과 다름없이 시퍼렇게 무장하고 있음을 직접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거인 같은 회사의 후광을 받으며 존재했던 내 삶의 보호막이 일순간 사라져 버리면서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한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머리속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는 직장내 괴롭힘, 퇴사, 퇴근 그리고 폭우에 실컷 두들겨 맞고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가을 운동회를 준비하느라 수업이 끝나면 늦게까지 남아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문제가 있던 그날은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인 매스게임의 연습이 있었습니다. 순서에 맞춰 다양한 자세를 연습하다 휴식 시간이 되어 모두가 운동장 바닥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인원이 맞지가 않았는지 전체에서 두 명을 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등에 두 명을 태워야 했던 친구가 나와 다른 한 명을 빼 달라고 손을 들었습니다. 이 일로 나와 친구는 그의 등에 있었다는 이유로 매스게임을 할 때면 옆에서 벌을 서야 했고 텅 빈 운동장에 남아 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얼차려가 당연하다고 자랑처럼 공표했고 우리 둘을 무리에서 빼낸 친구 역시 웃으며 일상대로 연습을 이어 갔습니다. 이 기억 때문인지 내가 인사팀의 전화를 받았을 때 이번에는 내 스스로가 먼저 불편한 상대의 등짝에서 내려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과거와 다르게 이번만큼은 상대에게 어떠한 감정도 미움도 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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