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b 하우스 Oct 03. 2022

13.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다

[에세이] 나는 퇴사에 실패했다

  주말이 되어 출근을 위한 준비 아닌 준비로 다소 이상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했던 퇴사에 관한 일들을 정리하는 한편 멀리 떠나 보냈던 마음을 다시 찾아 가져다 놓는 일을 했습니다. 개학을 하루 앞둔 학생 마냥 오랜만에 책과 노트를 꺼내 숙제를 확인하고 가방에 차곡차곡 담고 정리하는 의식과도 같은 시간을 치렀습니다. 한여름 장마에 무성해진 정원을 대하듯 무엇을 어디부터 손대고 정리할지를 모르는 난감한 기분이었습니다. 복잡해진 머리속을 조금이라도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모자를 눌러쓰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는 집 근처 산으로 향했습니다. 주말이면 자주 찾는 곳이라 본능에 따라 나서게 되었지만 바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냥 돌아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나의 마음은 이렇게 요동치고 또 저렇게 요동쳤습니다. 나의 속은 화약고가 폭발하듯 타올랐고 이것은 내가 산을 내려와 잠자리에 들때까지도 멈추질 않고 하나 하나를 태우며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그동안 조용하기만 하던 나의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지금은 복수심이 살아나 나를 마구 흔들어 댔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깨달으며 수행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왜 이리 컨트롤이 안될까? 이상하게 마음이 잡히질 않네?”하며 무심코 말을 던지면서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이 같은 푸념을 듣고 아내가 답을 찾아준 것입니다. “당연하지. 그 문제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다시 출근을 하려고 하니 문제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입니다. 내가 출근을 한다는 것은 다시 내가 모든 문제에 직접 맞서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의식으로 조정하면서 나는 지킬과 하이드로 돌변하며 서로를 죽일 것 같은 싸움을 벌였던 것입니다. 싸움은 한쪽의 승리를 원했고 나 또한 결론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해답이 의외의 곳에서 나오면서 내가 벌이던 싸움은 아주 시시하게 끝나 버렸습니다. 이로써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거짓말 같이 나에게 세상의 모든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조금전까지 내게 이빨을 들어내며 싸움을 걸어 대던 상대가 사라지면서 싸움을 이어갈 명분도 승리의 가치도 없어졌습니다. 긴 전쟁을 끝나면 이런 기분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분이 없어진 만큼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처음 시작하는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아침이 되면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길렀던 수염을 깎고, 묵혀 두었던 가방을 열어 책과 노트를 담아, 새로 다운 받은 오디오 북을 들으며 회사로 갈 것입니다. 여름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예상되지만 퇴사 날 쏟아졌던 폭우를 피했던 행운을 다시 꿈꿔 봅니다. 필요하다면 과거 회사 생활에 대한 기억을 손으로 쓸며 지우개로 지워 버리고 새로 그곳을 채워 보고 싶습니다. 


  나는 퇴사에 실패하여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만 몇 년 후 나는 다시 퇴사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준비도 많아야 하겠지만 나는 내 스스로도 내 주변도 불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그런 퇴사를 꿈꿔 봅니다. 그리고, 그때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팀 로빈슨처럼 두 손과 고개를 높이 치켜 올리고 감동을 품은 채 빗속을 가볍게 걸어 나오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12. 감사할 게 많은 하루를 보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