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작과 끝

생활

by 하모남


밤새도록 함박눈이 내리더니, 아침이 되어서야 그쳤다. 그 많던 눈도 며칠이 지나니 물이 되어 조용히 사라졌다. 무서운 태풍이 불어와 온 세상을 한바탕 난장판을 만들더니 어느 순간 순한 양이 되었다. 화려하던 개나리도 노란 산수유꽃도 목련과 철쭉꽃도 시간 속에서는 어쩔 수 없다. 세상에 생명이 있어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시작과 끝이 있어 아름답다. 시작만 있고 끝이 없이 영원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것을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나이 들어가면서 주변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좀 더 사랑으로 관심을 갖고 바라보지 못했던 젊은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과 시간은 항상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자연의 변화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우리네 삶을 배워야 한다. 세상의 모든 만물에, 세상의 모든 변화에 삶의 정답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정말 놀라온 발견이고 성찰이다. 자연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 태양계에 우주가 있고, 그 지구의 아주 작은 한 모퉁이에 점 같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기적이고 놀라운 일이다. 그 점하나 물 한 방울에서 생명이 시작되어 성장하고, 기뻐하고, 고민하고, 슬퍼하고, 화를 내고, 즐거워하며 아옹다옹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너무나 경이롭지 않은가.


짧은 인생을 살다가면서 우리는 너무나 마음 졸이고, 걱정하고, 고민하며 사는 시간이 많다. 또한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을 보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과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그것에 정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면, 벌써 머리 위에 서리가 내린 뒤다. 그래도 그 삶에 의미를 깨달았다면 다행이다. 삶에 의미조차 깨닫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지 않은가. 백세시대에 인생의 여름을 지나 수확의 계절 가을을 살고 있다. 75세까지를 인생의 가을이라고 말한다. 풍성하지는 않지만, 알차게 익어가는 들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다. 알찬 가을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누구나 시작은 미미하고 보잘것없다. 짧은 인생 같지만 그 속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신은 우리에게 그만큼의 시간을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인생이 중요하다. 길가에 하찮은 풀 한 포기도 자기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지 않은가. 삶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꾸준히 견디는 것에서 의미가 있지 않은가. 그런 모습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의 기본 근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작은 비록 울면서 왔어도, 끝은 웃으며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행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모든 것을 깨닫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부족한 자신을 늘 배움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잘 익어갈 수 있는 것도, 평소 부단한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는 일이 잦아졌다. 사고로 병으로 이별을 맞이할 때면 가슴이 아프다. 특히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는 것을 보면 너무 슬프다. 지난주에는 집안 가까운 동생이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멀리 떠났다. 그렇게 넉넉하고 향기를 내던 젊은 친구의 죽음은 믿어지지 않는다. 일주일을 꼬박 자리를 지겼다. 가장이 없는 남겨진 가족들의 자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사람을 좋아하던 동생은 자연스레 술자리도 좋아했다.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친다는 당연한 진리를 소홀히 여긴 결과로 보인다. 술은 인간이 만든 음식 중에 중요한 것이지만, 지나친 것은 더 큰 화를 부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천명을 넘게 살아보니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특히 술은 술을 부르게 되어 있다. 인간은 술을 이길 수 없다. 적당히 음식으로 술을 먹을 수 있는 자제력을 키워야 한다. 술로 인해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내 주변에 보면 사람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분들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어머니에게서 처음 태어날 때는 두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난다고 한다. 세상의 부와 명예를 두 손에 쥐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한다. 부와 명예를 두 주먹에 잡아 보기도 전에,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마지막에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내가 세상에 뿌려 놓은 자식들이 다 자립하고, 손주들의 재롱도 보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이제부터는 끝이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더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다. 먼저 가신분들의 편안함을 기도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