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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생각

생활

by 하모남


화려하고 흐드러지게 길가를 밝히던 벚꽃도 , 울타리가에 샛노랗게 봄을 알리던 개나리도, 목련의 그 우아한 자태도, 온 산들이 파스텔톤으로 물들이던 황홀한 시간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변해 갈 때쯤 오월이 온다.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월을 보내고 오월의 첫 출근길에 오른다. 왠지 아침 출근길이 한산하다. 라디오에서는 노동절이라 많은 직장인들이 쉬는 날이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여유로운 출근길이 기분 좋다. 근무지를 옮기고 짧아진 출근길이 너무나 경쾌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볍게 물을 한 컵 들이켜고, 잠자는 온몸의 세포를 깨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파트 헬스장으로 간다. 벌써 부지런한 사람들이 몇몇이 운동을 하고 있다. 먼저 스트레칭과 체조로 온몸을 푼다. 아침체조는 몸에 활력을 주기에 충분하다. 체조를 하고 나면 각종기구로 근육을 만들고, 마무리는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스트레칭으로 끝낸다. 약 1시간의 아침운동은 밥맛을 좋게 하는 비결이다. 사람이 50살이 넘으면 운동은 살기 위해서 한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하고 있다. 젊어서는 운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운동은 나를 지키는 필수요소다. 운동이 끝나면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아파트 정원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한다. 또한 정원 벤치에 앉아 맑은 공기와 새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바람에 산들대는 초록옷 입은 나무와 파란 하늘, 석가산의 작은 폭포소리,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 그 가운데 내가 살아 있어 숨을 쉰다. 우리는 좋은 것을 보아도, 그것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분명 내 마음이 조급하고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일찍 일어나고 여유를 갖고 좋은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본다면 주변이 모두 천국이고 황홀하다. 내 주변 모두가 내 것이다. 아파트 정원을 예쁘게 꾸며 놓았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무리 좋은 것도 이용하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다. 가끔 경치가 좋거나 운동시설이 좋은 곳에 가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못하고 사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 전에 내 주변을 먼저 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른 아침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걷는 아파트 정원이 너무나 아름답다. 막 새순을 내미는 나뭇가지부터 갖가지 꽃들까지 자기 삶에 모두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누가 봐주는 이가 없어도 누구와 비교하지 않으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모습에서 인생을 배운다.


나무나 꽃들이 시간의 흐름에 변화가 오듯이,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에게도 오월과 같은 청춘이 있었는데, 하루하루 충실히 살다 보니 벌써 이순에 가까워 오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에도 많은 변화들이 찾아온다. 먼저 노안이 오고, 귀가 멀어지고, 피부에 주름이 생기며, 머리에는 흰 눈이 소복이 쌓여 간다. 이러한 현상도 다 조물주가 다 뜻이 있어 서서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눈에 노안이 오는 것은 멀리 보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젊어서는 눈이 잘 보이기에 먼 곳을 바라보며 꿈을 꾸라는 뜻이고, 나이 들어서는 가까운 곳 즉 오늘 하루만을 보며 열심히 살아가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 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에 너무 실망하지 말고, 그저 오늘을 정성으로 살아가라는 큰 뜻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또한 귀가 멀어지는 것은 자기를 험담하거나 비평하는 소리를 듣지 말라는 뜻이다. 젊어서는 귀가 밝으니 주변의 정보와 선생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으라는 뜻이지만, 나이 들어서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며, 조급함 없이 여유를 가지며 살라는 뜻 인가 보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은 저 멀리 노인이 지나가니 젊은 사람들이 조심하라는 뜻인가 보다. 아침 산책을 하면서 정원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그러고 보니 오월은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달이다. 일에 대한 신성한 생각을 해 보는 첫날부터,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맑은 어린이날,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기원하고,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르치는 부처님 오신 날, 배움에 대한 감사와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스승의 날, 어른이 됨을 기념하는 성년의 날, 부부의 의미를 되새기는 부부의 날 등 어려서부터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꼭 한 번은 깊이 생각하고, 거쳐야 하는 의미 있는 일들이 몰려 있는 가정의 달이다.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첫 보금자리가 가정이다. 이 가정을 올바르게 지키고 만들어 가는 가장이야 말로 가정의 기둥이다. 그러나 이젠 아이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니,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에서 조금은 벗어버린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동시에 왠지 공허하고 허전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키울 때가 진짜 사람 사는 맛이 나던 때라는 옛날 어른들의 말씀을 이제는 알겠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잘 헤처 온 것에 감사하면서도, 이제부터는 나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월이 좋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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