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말

생활

by 하모남


또 한 해를 보낸다. 또 이렇게 2025년을 기억 속에 묻는다. 매년 12월이 가까워 오면 새해 달력을 찾게 된다. 요즘은 휴대폰 속의 달력을 보게 되어, 집에서는 달력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수시로 달력을 보며 주간, 월간, 분기에 할 일을 체크하며 살기에 아직도 달력은 필요하다. 올해는 사무실에서 가까운 은행과 우체국에서 달력을 구했다. 새 달력을 사무실에 걸어 놓으니, 왠지 새해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짠하다. 쓸쓸함을 느끼다가도 건강하게 잘 보낸 한 해가 마냥 감사하기도 하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시간에 매몰되어, 나를 잊고 살지는 않았나 생각도 해 본다. 올해는 특히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가슴 아픈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13년을 홀로 사셨다. 그간 주말이면 삼형제가 교대로 아버지를 찾으며 외로움을 덜어 드리려 노력했다. 다행히 요양등급을 받으셔서 요양보호사와 주간보호센터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해 오셨다.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10여 년을 사신 것에 감사하면서도 아들로서 마음이 아팠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주변에서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코로나시절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후, 가장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해로 기억될 것이다. 때가 되면 떠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랑을 떠나보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별은 늘 가슴 아프다. 계절마다 꽃이 피고 지는 단순한 순리가, 사람에게도 똑같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한 해였다. 우리네 삶이 유한하기에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언젠가는 누구나 홀로 될 것이다. 홀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 것인가는 알지 못하지만, 스스로 홀로 사는 것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법정 스님의 책 '홀로 사는 즐거움'이란 책이다. 법정스님의 책은 언제 읽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깊은 울림과 영감을 주는 책이다. 평생을 스님으로 살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바른 성심을 강조한 분이다. 많은 책을 읽고 긴 세월 수행을 통해, 깨달은 삶의 지혜를, 여러 책으로 후세들에게 남기신 훌륭한 분이다.


스님은 책 속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강조한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홀로 왔고, 살 만큼 살다가 떠날 때도 홀로 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끼리 함께 어울려 살면서도 생각은 저마다 다르며,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르 듯 삶의 바탕을 이루는 업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 산다는 것은 진흙 속에서도 더럽히지 않은 연꽃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홀로 있으면 고독과 고립이 찾아오는데, 고독은 옆구리께로 스쳐 지나는 시장기 같은 것이고, 고립은 수인처럼 갇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홀로 있다고 해서 고립되어서는 안 되고, 고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독은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라 강조한다. 따라서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할 수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진리는 홀로 있을 때 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홀로 있을 때 먼저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에 감동을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홀로 있을 때 자기 관리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먹고 자고 입고 사는 일상의 일들에, 홀로 사는 사람은, 더욱더 자기 관리에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에 큰 위로와 공감을 얻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스스로를 더 돌아보게 된다. 홀로 왔기에 홀로 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는 동안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내가 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인생도 아니다.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의 내면을 살찌우는 시간이 많아지고, 깊이가 더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시간이 많아질수록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은퇴 후 홀로 있는 시간이 날로 늘어나는데, 나는 무엇을 하며 누구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즐거워야 인생이다. 즐겁지 않다면 그것은 잘못된 인생이다. 즐겁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 보아야 할 때다. 즐겁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에는 건강한 신체와 일상을 홀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야 즐겁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으며 더 성숙하는 오늘을 만들어 가야 한다. 좋은 관계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통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며칠 남지 않은 고독한 달력을 바라보며 많은 상념에 잠긴다. 그래도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오늘이 좋다. 다시 떠오르는 태양이 있는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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