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산다는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를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일 것이다. 나는 지금이 무엇을 해야 할 때인가를 조용히 되묻는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 그동안 아내는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정성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해왔다. 아내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분에 집안은 늘 따뜻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 또한 한결 같았다. 나 역시 가장으로서의 자리를 잘 지키며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아이들이 머물던 방은 이제 빈 방이 되었고, 아내 또한 한 시름 내려놓은 듯 보인다. 이제는 가족을 위해 애써 온 아내를 위해, 그동안 미처 갖지 못했던 좋은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에 홀로 계신 장모님께도 더 자주 찾아 뵈어야겠다. 지금은 아내와 둘이서 더 멋진 인생을 만들어갈 때이다. 주말이면 아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도 자주 떠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소소하지만 깊은 행복을 쌓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전역을 결심하고 재취업에 성공해 전주에 터를 잡은 지도 올해로 21년이 되었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은 이제 결혼을 앞둔 성인이 되었다. 세월은 뒤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햇살 좋고 바람 고운 3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이런 날을 집에서 보내기에는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아내와 함께 진안 마이산으로 봄을 만나러 나섰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한 시간 남짓 여유롭게 달렸다.
마이산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차량이 몰려, 주차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길이었기에 기다리는 시간이 다소 불편함도 있었지만, 순서를 기다려 주차를 마칠 수 있었다. 사찰까지 약 2km 남짓한 길을 천천히 걸으며 봄을 온몸으로 느꼈다.
관광객들의 얼굴에도 봄기운이 가득했다. 아직 벚꽃은 피지 않았지만,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발이 불편한 아내를 배려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작은 호수를 지나 사찰에 이르니, 크고 작은 돌탑들과 말의 형상을 한 마이산의 바위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아내와 나는 추억을 사진에 담으며 한동안 머물렀다. 지금이야말로 삶을 즐겨야 할 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내의 얼굴에도 오랜만의 나들이에 대한 설렘이 번져 있었다.
하산길,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잠시 하모니카 버스킹을 했다. 음악이 흐르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고, 그 반응에 나 또한 기쁨을 느꼈다. 누군가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더덕구이로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더없이 완벽한 하루였다.
다음 날 아침, 집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초이스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늘 둘이서 트레킹을 하던 친구였는데, 이번에는 가족들과 함께 구례로 벚꽃 봄마중을 가자는 제안이었다.
초이스 친구는 전주에 정착하며 동기생 모임에서 만난 동기다. 나와 생각과 삶의 방향이 닮아 있는, 참으로 긍정적이고 볼수록 매력 있는 친구다.
그 친구 역시 오랜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하여 고향 전주에서 사업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주 근교의 둘레길을 함께 걸으며 우정을 쌓아왔다. 함께 걷는 길 위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고단한 인생길에 서로에게 작은 빛이 되어 주었다.
매달 한 번 정도는 만나 시간을 함께해 왔다. 이번 달에는 몇 해 전 완주 위봉사 인근, 작은 암자에서 인연을 맺은 비구니 스님을 찾아 뵙기로 했으나 친구의 제안으로 갑자기 계획이 변경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의견을 묻자 흔쾌히 동의했다. 점심을 먹고 간단한 간식을 챙겨 친구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에는 친구 부부가 나와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여행을 즐기는 친구의 모습은 늘 인상적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부부 동반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나 또한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한 차에 올라 구례로 향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구례 IC를 벗어나자 읍내 전체가 벚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친구의 안내를 따라 축제가 열리고 있는 천변으로 향했다. 마치 온 군민이 모두 나와 있는 듯한 활기였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을 걸으며,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을 담아내고 있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함께 걷는 시간 속에서 두 부부의 거리는 한층 가까워졌다. 오래된 인연처럼 자연스러웠다. 카페에 들러 차 한 잔을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전주로 돌아오는 길, 친구가 예약해 둔 모악산 입구의 작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소박한 음식과 막걸리 한잔이 어우러지며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이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다는 친구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늘 친구와 둘이 걷던 길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하니 기쁨이 배가 되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집에 도착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와 함께한 하루는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
우리는 앞으로 더 자주 함께하자는 약속을 나누며 헤어졌다. 좋은 친구와 함께 걷는 인생길이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오늘이 좋다.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