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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제로 Jun 16. 2021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

그게 바로 나

 



이별을 했다. 진작 했어야할 이별이었다.


휴대폰을 가득 메운 그와의 사진을 지우면서 조금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서로의 사랑이 식었다는 것은 눈치챈지 오래였다. 다만 잠시 내 곁을 머물던 커다란 존재를 내치기엔 두려움이 앞서 미루고 있었을 뿐이다.


어느 정도 흔적을 정리하고 푹신한 이불 위로 몸을 던졌다. 바스락 거리던 이불 소리도 사그라들고 벽걸이 시계조차 없는 우리집에서는 똑딱 거리는 소음도 나지 않았다. 이 집 안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라고는 나 하나 뿐이었다. 아, 간혹가다가 냉장고에서 우우웅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의미없이 티비를 틀어봤지만 평소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하던 시간은 아니었기에 빙빙빙 채널만 돌리다가 금방 전원을 꺼버렸다. 주섬주섬 휴대폰을 찾아 열어 본 유튜브에는 유독 쓸데 없는 영상들로 피드가 가득 차있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한 건 넷플릭스. 볼만한 영화라고 추천을 받아 틀어놨는데 초반 30분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플을 종료했다. 하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아 할 일 없는 몸뚱이만 이불과 함께 바스락 바스락 거렸다. 또 다시 병이 도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나는 꽤 쉬지 않고 연애를 계속 해왔다. 그리고 전남친에게 질척거리는 것도 서슴치 않아했다.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왔다가 나간 자리, 그 틈이 주는 외로움은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내 마음을 너무나도 쉽게 누군가에게 던져버렸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집착이 바닥에 깔려있는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한참 신나게 놀고 있다가 해가 지고 하나둘 씩 집에 갈 때는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조금 크고 나서는 친구들의 자리를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대신 하기 시작했고, 친구들보다 더 친밀한 관계에 나는 차즘 안정감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랑은 참 빠르게도 식었다. 특히 내가 먼저 마음이 식게 되는 쪽이 더 힘들었다. 더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이별이 두려워 헤어지지 않았고, 결국 헤어지게 되더라도 계속 다시 연락할 구실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사랑하지 않는 상태로 다시 만나게 되면 트러블은 더욱 심해졌다.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 다시 이별. 마음이 소진될 때까지 그 행위를 반복하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가 내 이상형이던 아니던 외로워서 만난 경우도 더러 있었다.


다른이들에게 드러내기엔 찌질하고 변태적이며 아주 나쁜 나의 연애스타일이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갈 수록 외로움의 무게는 점점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외로움은 어쩌면 내 안에 퍼져있는 강력한 세균덩어리이며 치료가 필요한 아주 골칫덩어리 불치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의 병증은 계속해서 나의 정신세계를 파괴했고, 내가 점점 망가지고 있는게 느껴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병이 아니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 병이었다.


아무래도 투병생활에 들어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외로움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고 그 병을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덧 20대의 끝자락에 닿은 내가 더이상 사랑과 외로움을 헷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세상엔 나처럼 외로움으로 인해 많은 실수를 거듭하며 사는 사람들이 조금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안다. 그들이 얼마나 낮은 자존감과 우울함에 괴로워할지를.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나의 투병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 레벨업을 해서 될 수 있는 건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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