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킥 하지 말자. 이불을 발로 걷어차봤자 털어지는 건 내 과거가 아니라 이불 위의 먼지들이다.
왜 이리도 지난 날이 후회되는 걸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나의 답은 생각보다 빨리 정해졌다. 좀 더 좋은 방식을 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좀 더 좋게 살아왔다면 지금의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었을텐데 하는 알량한 믿음이 있어서 그렇다.
후회란 대게 그런 식이다. 그때 그걸 했어야 하는데, A가 아니라 B를 선택했어야 하는데 , 아 그 때 내가 왜그랬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말 걸... 그런 거 . 물론 우주 최강 찌질이인 나는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번은 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 . 이런 거지같은 생각들을 수백번씩 반복하다니 나도 참 대단하다.
후회를 한다는 건 지금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찌질이라고 칭하며 남들 앞에서는 스스로를 깍아내릴지언정 속으로는 나에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늘 가지고 있었다.
‘내가 좀 찌질하고 구질구질하긴 하지만 선하고 정의롭고 남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면이 있기도 하지. 사실 나 꽤 괜찮은 사람인 거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을 깨뜨리는 선택을 했다는 기분이 들면 나는 그날 저녁부터 머리를 감싸쥐고 후회를 시작한다.
‘ 어떻게 그렇게 생각없이 행동할 수가 있지? 남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진짜 바보같고 못됐다고 생각할거야’
머리를 콩콩 쥐어박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봐도 지나간 일은 지나가버려서 어쩔 수가 없다. 발을 동동 구를 수록 얼굴만 붉어질 뿐이었다. 남들에게 나는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 때 그일로 인해서 별로인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모든 순간 현명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왜 늘 최악의 선택지를 고르고야 마는지..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선택이 아니라도 나는 이미 충분히 별로라는 것이다. 딱히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자존감을 깍으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랄까. 그냥 괜찮은 사람이 아닌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좀 괜찮은 사람이 아니면 어떤가. 인간은 본디 태어나서 의식주만 해결되면 그럭저럭 살다가 늙어 죽는 것이다. 조금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고 좀 안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 애초에 괜찮은 사람에 대한 정의가 무어란 말인가.
그리고 남들은 딱히 나의 실수나 잘못을 오래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 내가 남들의 실수를 하루종일 생각하고 있지 않듯이 말이다.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안 괜찮은 사람인지 저울에 재보며 ‘어허.. 이사람은 좀 안 괜찮은 사람이군 비웃어줘야겠다 허허허’ 하는 사이코패스는 별로 없다.
요즘의 나도 여전히 후회없는 삶을 살지는 못하고 있다. 인생은 매순간이 선택이니까. 가끔씩 뒷목이 서늘해질만큼 ‘아... 왜그랬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조금 발전했다면 혼잣말이 하나 늘었다는 것이다.
“아, 나 원래 별로였지 ? 어쩔수 없지 뭐” 하고 말이다.
후회가 반복되는 것은 외로움이라는 병증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가끔은 그냥 뻔뻔해지는 것도 좋은 선택인 것 같다. 후회한다고 해서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될 것도 아닌데 좀 뻔뻔한 사람이 되는 게 낫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