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몸을 움직이려고해
외로운 감정이 들 때 무얼 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해준 답변이다.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안에 있는 것 보다는 밖에 나가서 무언가 활동을 하거나 집안일 이라도 하며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록 잡생각이 줄어들어 부정적인 감정도 덜 느끼게 된다고 한다. 상당히 현실적이고 도움이 되는 의견이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시 침대에 눕긴 했지만 말이다.
그 외의 의견으로는 친구와 수다를 떤다 던가 재밌는 만화나 영화를 본다 던가 하는 것이 있었고, 내가 가장 부러웠던 의견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런 대단한 사람이 내 친구였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된 것이라 신선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처럼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못되었다. 이별을 한 뒤 최근 후폭풍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찌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만날 마음도 없으면서 헤어진 전 애인에게 전화라도 걸어볼까하는 마약같은 생각에 빠졌다. 이건 분명 잘못된 일인 줄 알지만 참을 수 없는 욕구에 손가락은 자꾸만 통화버튼을 향했다.
이걸 누르면 나의 참패다. 이건 내 인생에 대한 모욕이다. 이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욕밖에 나오지 않을것이다.
참내, 나는 원래 찌질했어. 한 때 가장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사이면서 며칠 새에 고작 전화 한통도 못하는 사이가 된 단 말이야?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너무 엄격해.
나약한 정신머리와 자존심 사이의 팽팽한 대결이 이어졌다.
나는 태초부터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라 애인이 있다고 해서 혼자있을 때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럴 때 나는 주로 끊임없는 통화를 했다. 비록 몸이 떨어져 있을지라도 전파를 통해 들려오는 애인의 음성은 자꾸만 가라앉으려고 하는 나의 난파선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해변가에 무사히 안착하게 했다. 모임이 끝난 후 혼자 타고 가는 지하철 안이나 퇴근 후 몸을 정비하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 이후의 시간, 통화는 나에게 단순한 일상보고가 아닌 외로움이라는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백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 결국 전화버튼을 눌렀다는 나의 한심한 결정에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통화내용이 어땟는 지에 관해서는 부끄러우니까 전하지 않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별 후 외로움을 애인과의 통화로 풀어선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잠시 까먹었다가 다시금 깨달았다.
혼자일 때의 외로움은 아직 어떻게 해야 제대로 달랠 수 있는 지 잘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어쩌면 혼란한 나의 마음을 글로써 풀어보려는 노력일지 모른다. 나는 딱히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존경할만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쟤 왜저래...? 하고 생각이 들만큼 부족한 사람이다. 이글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주기 위한 착한 글이 아니라 사실 내 부끄러운 이면을 누군가는 공감해주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쓰는 이기적인 글인가도 싶다.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더니 정신이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니 뇌가 휴식을 취한 것 같다. 외부활동은 확실히 외로움을 없애는것에 도움이 된다. 돌아오는 길 보인 밤하늘은 유난히도 구름 한 점 없이 달만 휘영청 빛났다. 다른이들은 어떻게 이 청아한 달빛 아래 있으면서 외롭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외로울 때 당신을 무얼 하며 이겨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