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 할머니가 친구와 싸우고 돌아온 나에게 '지는 게 이기는 거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에 더 크게 울던 초등학생은 어느새 서른 살이 되었고 가끔 그 말을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나는 말끝마다 '미안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자매품으로 '고마워'도 있는데 비율을 따지자면 '미안해'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팔푼이 같은 성격 탓에 실수가 잦으니 생긴 말버릇이기도 하지만 사실 기를 쓰고 누군가를 이기는 것보다 그냥 먼저 사과하고 끝내는 게 덜 피곤해서 그러기도 한다.
인간관계를 수평으로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워서 나도 가끔은 누가 더 많이 져 주었는지 따져보다 이번엔 먼저 사과하지 말아야지 하며 덮어두기도 하는데, 그럴 때 상대방 쪽에서 쌩을 까버리면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또 상처를 받고 몇 날 며칠을 찜찜한 기분에 보낼 때도 있다. 이러저러한 마음고생을 따져봤을 때 심하게 억울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먼저 사과하는 게 낫겠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착하다'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기도 하는데 응, 그건 잘못 본 거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져준다. 사소한 잘못에도 사과하고 작은 선물에도 고마워하며 분란이 생길 것 같으면 그냥 내 잘못이려니 생각하고 참기도 한다. 그런데 진짜로 내가 잘못한 것 같아서 사과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다. 사실은 고맙지 않은데 고맙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억울한데 화를 삭이는 순간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거짓말쟁이인셈이다.
위선이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각각의 성질머리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살아가면서 솔직함만이 미덕은 아니니 말이다. 때로는 진심이 아닐지언정 사탕발린 말이 더 기분 좋게 다가올 때도 있지 않은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게 서로를 위한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본다.
내가 이렇게 위선자가 된 것은 내가 이기는 것보다 상대방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당신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사과를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그러니 내가 하는 미안하다는 말은 내 곁을 떠나지 말고 전처럼 있어줘 라는 말로 해석해주었으면 한다. 정말로 미안하진 않더라도 나의 사과를 받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항상 진심이니 말이다.
할머니, 아무리 생각해도 지는 건 이기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먼저 건넨 사과는 발 뻗고 잘 때 도움이 되긴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