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나이를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나라에서 만 나이로 하라고 하여
깎인 나이로 살다 보니
여간 헛갈리는 게 아니다.
어쨌든
나이란 무의미를 넘어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일하다 보니
눈이 심각하게 나빠졌다.
누군가는 그게 노안(老眼)이라고 한다.
어쨌든 눈이 안 보인다.
어느 날은 돋보기를 쓴다.
가까이 있는 건 잘 보이는데
누구라도 와서 말을 걸면
그를 쳐다보느라 벗어야 하는
귀차니즘(국어사전:만사를 귀찮게 여기는 것이 습관화된 상태)이
심하게 발동한다.
그렇다고 안 쓰고 있자니
눈을 찡그리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내 얼굴에 팔자주름(八) 생기는 것도 아차 싶은데 미간에 내천(川)자라니...
실내에서 쓰면 그럭저럭 가까운거나 먼 거나
잘 보이는 안경으로 갈아탔다.
가까운 글이 돋보기만큼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쓸만했다.
그렇게 실내에서 눈을 혹사하고 퇴근할 때쯤 되면 만사가 귀찮다.
안경을 벗어 던지고 빨간불 파란불 잘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차간거리 적정히 지키면서 맨얼굴로 당당하게 퇴근한다.
근대 희한하게 저 멀리 있는 표지판,
지나가는 길에 걸린 총천연색 현수막의 글씨
고즈넉한 기와지붕과 하늘은 그렇게 또렷이 보인다.
아 이거 퇴근길이라서 잘 보이는 건가?
가까운 사람의 티끌은 그만보고
이젠 통 크게 멀리 있는 거나 통찰하라는
나이가 주는 선물인 건가?
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