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건 아니지만 괜찮아
원장님! 지인이 호박농사를 짓는데
생각나서 한 박스 보내요~
맛있게 드세요:)
두둥
내게 단호박이 한 박스나 생겼다.
이는 나의 찐한 노동을 예고하는 복선이다.
나의 성격은 은근 단호박이다.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좋다
잘하는 건 잘한다. 아닌 건 쫌 아닌 것 같다고
그렇게 안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때가 많았던 경험치로
점점 그렇게 변하는 거 같다.
그런데 요사이 딜레마에 빠진다.
단호박스러울 때 함께 일하는 동료 중 스트레스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눈치를 본다거나,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며 어찌 매일 칭찬만 받으며 일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상처까지 주면서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다.
단호박이라 단호박이라....
나의 머리는 재빠르게 굴러갔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의미 있게 단호박을 사용할 수 있을까?
그렇지!!
이번 주 화요일에 아이들이 원내에서 물놀이를 하니까...
아이들이 실컷 놀다 보면 배가 고프면서 살짝 추울 수도 있겠네
나는 수영장에 가면 뭐가 먹고 싶었지?
찬물에서 놀다보면 배도 고프고 따듯한 게 먹고 싶지
그렇다면...
<단호박 튀김>이다.
그렇게 시작했다.
그토록 짠맛 나는 땀이 내 이마에서 입술로 내 목덜미로 물흐르듯이 들어 올 거라는 건 미쳐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은 가끔 열정이 과해 후회를 하는 일이 있기는 하다.
마음은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다 보면 나의 예상을 정말 빗나가는 일
그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아이들이 원내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날이다.
대여한 큰 수영장도 왔고 내리쬐는 해도 가릴 적당한 차양막도 설치가 됐다.
실외 수돗가에 호수를 연결하여 하늘을 뚫을세라
샤워기처럼 뿜뿜 품어대는 이동식 스프링쿨러도 열일하며
실컷 흥을 돋운다.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런데 약간 싸한 느낌이 든다. 튀김옷이 살짝 묽다.
그러니 튀김옷이 적게 묻어 대놓고 나 단호박 튀김이에요가 되어 버렸다.
단호박스럽게!!
아이들이 "나도 주세요 나도 주세요" 할 줄 알고
잘난 척하면서 물놀이에는 단호박 튀김이 제일이지? 하고 단호박 임을 은근슬쩍 말하려고 멘트도 철저히 준비했다.
아뿔싸
아
무
도
안 온다...
그래도 원래 채소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서너 명 와 주긴 했다.
어떤 아이는 의리로 왔다가 한두 입 베어 먹더니 담임선생님에게 슬쩍 건네주는 걸 보고 말았다.
다행히 자존심을 세워주는 아이들 서넛은 있었다.
원장님 또 주세요!!
나는 세 번 먹었다!!
나는 또 먹을 거다!!
그러나 나는 또 보았다.
먹기 전 튀김 하나를 오른손에 들고 왼손에 또 쥐며 욕심부리던 아이가
한입 배어 물더니 들었던 하나를 슬쩍 다시 내려놓던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왜 맛있게 안 먹는지... 뭐가 문제인지...
그 삼복더위에 땀인지 눈물인지 죽죽 흘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추측 가능한 가설 세 가지
하나.
튀김옷이 너무 얇아 대놓고 단호박스러웠다.
(단호박은 두껍고 바삭한 튀김옷으로 위장할 필요가 있었다.)
둘,
단호박의 크기를 너무 두껍게 하지 않고 1~2cm로 조금 얇게 하는 것이 좋겠다.
(튀김옷 반 단호박 반의 지분율이 필요하다.)
셋. 무엇보다 일단 너무 더운 날엔 튀김은 아닌 걸로...
나의 단호박적 성격도
때때로 분위기, 상황, 날씨에 따라 그때그때 탄력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마치 단호박의 튀김옷처럼...
아무리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때에 따라 틀릴 수 있다는 걸
이 와중에
단호박 튀김 프라이팬 속 콩기름에 비치는 하늘은
참 예쁘고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