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손의 위력 닥치는대로 감아주겠어
나름
미식가인 아들은 감자 듬뿍 넣은 된장찌개와 청양고추 송송썰어 돌돌 말아 구운 계란말이를 곁들인 집밥을 좋아한다. 요사이 웰빙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충만한 탓에 어떻게 하면 맛있게 그리고 건강하게 먹을까를 늘 고민한다.
그중에 궁금한것이 오이 김밥 맛이다.
오이는 막 수확하면 겉면에 가시가 보송보송하게 있다. 보송보송하게 라고 표현한 이유는 물에 한번만 쓱하고 씻으면 "나 가시있던거 맞아?"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금새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시인데 가시가 아니다.
오이는 뭐니뭐니해도 막 수확한 어린 오이를 따서 물에 무심한듯 씻어 아삭하게 한입 배어 물때가 아닐까 싶다.
오이에서 쏘옥 빠져나오는 단맛과 수분이 한낮의 지친 몸과 마음을 꽤나 촉촉하게 해준다.
늘 그렇게만 먹던 오이를 김밥에 넣는것으로 도전하려니 미식가 아들이 반대한다.
자기는 오싫모(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며 오밍아웃(?)을 한다.
아... 그렇구나
이 시점에 얼마전 넷플릭스로 정주행했던 굿보이의 마지막회(We are the champions)가 생각났다.
관세청 공무원으로 마약등 불법에 연루된 빌런 민주영(배우 오정세).
그가 결국 경찰인 윤동주(배우 박보검)의 검거로 감옥에 갇혀 있을때 다.
윤동주가 도시락을 싸들고 민주영의 면회를 왔다.
도시락을 열어보니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오이가 통째로 들어간 오이김밥이었다.
그의 얼굴은 약오름에 미간을 바짝 찌푸렸다. 조금이나마 가여히 생각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려나? 했던 그의 마음에 윤동주는 오이를 극혐하는 민주영을 향해 그렇게 보기 좋게 한방 먹였다.
어린이집 작은 텃밭을 가꾸며 아이들과 오이를 직접 키우고, 여러가지 요리를 통해 오이를 대하는 자세를 변화 시키고자 많은 고민을 하지만 사실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기껏해야 감자칼로 얇게 썰어 오이 마사지를 하며 '맛있는건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말로 살짝 오이에 대한 미안함을 포장하는것 아니면 그냥 어른이 되면 잘 먹겠지라는 희망만을 전할뿐이다.
일주일동안 비가 내려 텃밭과 소원하게 지나다가 비가 그쳐 만반의 준비를 하고 텃밭에 나갔다.
여기서 만반의 준비라 함은 모자쓰기, 펑퍼짐한 바지입기, 긴소매 티셔츠 그리고 코와 볼, 뒷목까지 감싸는 마스크쓰기, 장갑과 장화이다. 아무리 더워도 꼭 이건 필수이다.
그래야 좀 더 편하게 텃밭을 돌볼수 있다.
오마이갓!!
오랫만의 텃밭은 정말 난리가 났다.
특히 오이가 우후죽순 가지를 뻗어 어디가 원래 순인지 어떤것이 곁에서 난 순인지 도통 알수가 없을 정도로 영켜있다. 뿐만아니라 오이 줄기에 있는 넝쿨손 녀석들이 바로 옆에 있는 고추의 가지에 슬며시 접근하여 주리를 트는 광경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 정도면 전쟁 선포이다. 넝쿨손 소탕작전이 시작된다.
수분 많이 먹으며 잘 자라는 오이라고 약할거라느니 순하다느니 하며 얕볼일이 아니다.
그어느 것도 약한건 없다.
다만 조용할 뿐이다. 조용한건 약한게 아님이 분명하지 않는가
그의 강인한 넝쿨손은 지금도 누구의 주리를 틀까를 늘 생각하며 노려보고 있다.
우리의 삶에도 조용히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런데 조용하면 웬지 쎄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결과는 크고 작은 사고로 나타나는걸 종종 경험한다.
사람 사는 곳은 늘 시끌벅쩍한것이 정상이고 그것이 건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웃음소리, 우는소리, 하소연하는 소리, 알아달라는 소리... 이렇게 여러소리가 들리는 것의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출처 2025 트랜드코리아)이며 평온함이다.
그러니 우리 오이를 약하다고 놀리지 말 일이다.
오늘은 조용하고 평소 말없는 아이들을 조금더 세심한 눈으로 바라봐야 겠다.
그들도 하고 싶은 말이 분명 있을것이므로
오이라고 놀리지 말아요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오이라고 놀리지 말아요 스쳐가는 얘기 뿐인걸...
(이승철의 소대시대 가사중- 전지적 오이시점으로 슬쩍 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