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레싱이 필요할 때
한동안
손뼉 칠 때 떠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잘한다 잘한다 할 때
멋있게 점프 업하는 것
멋은 있어야 하고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지만
가끔 날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때론 아파했으면 좋겠는 말 같지 않은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어린이집에 근무한 지 2년 차 된 교사의 아동학대정황 이슈가 발생했다.
단 한 번도 그런 종류의 불미스러운 일을 경험해보지 못한
30년 차 원장이라
경험치 없이 일을 처리해야만 하는 것이
마음 아팠다. 아니 머릿속이 온통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마침 휴가였던 담임교사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듣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학부모도,
오해소지가 있을법한 그런 모습이
CCTV에 찍힌 교사의 행동도
모두 원망스러웠다.
원장이랍시고
그동안 누가 시키지도 않은 부모교육을
소그룹으로 준비하여 진행하고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 육아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 줄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하던 끝에
뻑뻑하게 직관적으로 그렇게 사건은 다가왔다.
머릿속이 텅 비고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열심과 열정이 고스란히
와르르 무너졌다.
무엇보다 교사를 잘 관리했어야 했을까? 하는
자책과 자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더 큰 문제는 교직원들이었다.
의욕상실과 더불어 학부모들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눈치 보는 행동들은
아이들을 향한 부자연스러운 교육으로 이어졌다.
교육괴정을 이어가는 중요한 요소인
행사의 축소가 불가피했고,
어린이집 전체 분위기는 위축됐다.
결과적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할 아이들의 권리,
교사로서 아이를 바르게 자라도록
주의, 훈계, 훈육등을 해야 할 권리에
제동이 걸렸다.
더욱 안타까운 건 어떠한 격려나 칭찬도
함께 멈춰 버리고 말았다.
아이들을 안고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주는 것
귀엽다고 양볼을 잡아 보는 것
동물 흉내를 내며 잡아먹겠다는 역할놀이를 하는 것 모두...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는데 차 오른쪽 뒷바퀴에서 덜덜 덜덜 거리는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뭔가 묵직한 물건이 바퀴에 걸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바퀴에 펑크가 나 바람이 빠진 것 같기도 했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나 하나쯤 없어져도 괜찮겠지?'
30년 동안 이업에 종사했던 것이
더 이상 자랑과 자부심이 아닌
수치로 느껴질 때쯤이었다.
'아 죽어야겠다.'
그러다 차바퀴에서 소리가 더 커졌다.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차에서 내려 뒷바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뭐가 끼었는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내가 보였다.
'아 죽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웃픈 해프닝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이 문득문득 생각날 때면
지독한 몸살을 앓는다.
사방이 빌딩이고 사방이 그냥 땅인 곳에서
달리고 달려도 도로뿐인 그곳에서
난 그렇게 길고도 긴
번아웃을 맞이했다.
정서조절코칭북 내 감정의 주인이되어라의 저자 이지영교수는 아래와 같이 조언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남을수 있도록 돕는 장치로, 생존과 적응에 유용한 정보를 준다(중략) 정서의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기 위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하고 무시하고 억누른다고 감정이 사라지거나 해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를 피하고 무시하고 억누르는 것이 아닌 정서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여야 할까...
오랜만에 사표를 써 봤다.
신기하게 사표를 쓰는데 쾌감이 들었다.
진짜 그만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걸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이 여럿인걸 안다,
그들도 이런 마음일까?
그래서 결심했다.
롸잇나우!!
그렇다면 지금 한번 떠나보자
그냥 나의 마음을 만져주자,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아픔을 나의 무능력함을 나의 부족함을
덮어두었던 상처를 마주해 보자
아플지라도 곯아 터지게 두었던 그 마음의 상처에
소독액을 들이부어 휘져으며 드레싱 해주자
그렇게 사표대신 가방을 들었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