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눈을 뜨니 새벽 5시다.
전날 평소보다 너무 일찍 잠에 든 탓이기도 하고 늘 새벽에 일어난 버릇 탓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고 러닝을 하기도 한다.
약간의 흥분 그리고 한낮 같은 열정, 90%의 설렘이 있던 어젯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저 평온한 하루가 또 시작될 모양이다.
손가락만 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벼운 러닝복을 입고 바닷가 모래밭에서
출렁이는 바닷물이 닿을랑 말랑한 거리에서 뛰는 모습이 너무 평온하고 아름답다.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다니
어제 먹은 스테이크가 아직도 뱃속 가득이다.
부쩍 소화가 안 된다. 다행히도 철도 씹어먹을 나이 때 정말 많이 먹어두길 잘했다.
이렇게 세상엔 맛있는 게 천지삐깔인데 소화가 안 되어 먹을 수 없다니 한편 억울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오늘은 배로 제주에 들어간다. 아침은 냉수 한잔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래야 제주도에 가서 맛있게 해물 라면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제주에 도착 후 여객터미널 어딘가에서 해물라면을 먹는다면 럭키비키다. 아님 말고
부산에서 완도로 이동한다.
부산에서 이용해도 좋지만 온 김에 부산에서 완도까지 횡단을 해도 좋을 거 같았다.
누군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수 있지만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못지않게 가는 과정도 의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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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발달한 도시와 바다가 어우러진 곳이라면
전라도는 그냥 푸근한 고향 같은 곳이다.
올망졸망한 마을 구성과 낮은 건물들이 그렇고
새까만 그들의 피부가 그렇다.
부산은 새련된 옷을 입고 있지만 가끔 도로에서 좌회전인지 직진인지 헛 갈릴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은 외지인은 왕따 당하는 느낌이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고 일부 지역만을 보고 전체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걸 안다.
그냥 나의 생각일 뿐
비가 와서일까? 부산에서 완도까지는 쉼 없이 달려 4시간이 걸렸다. 여객선 탑승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는데도 빠듯했다.
아침에 조금 일찍 나서거나 배를 조금 늦게 탔으면 완도의 허름한 식당에 들러 소소한 바닷가 정식을 먹어도 좋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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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그것도 혼자 배로 제주에 들어간다.
설렌다.
차를 가지고 들어가니 더 그렇다.
늘 차를 렌터 할 때 면 주유를 얼마큼 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순간 짠순이가 되었었다.
미리 예약한 여객선에서 하루 전날 자세한 안내를 보내왔다.
내가 여객터미널까지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배에 차를 잘 싣고 갈 수 있을까?
차를 싣고 나는 차 안에 있어야 하나 여객실 쪽으로 가야 하나?
여객실은 어디로 가면 있나?
3등 객실을 예약했는데 그곳은 어떻게 생긴 곳일까?
사람은 몇 명이 있을까?
3등 객실에는 가족단위 한 팀, 같은 연령대끼리 탄 여성 한 팀, 그리고 나머지 2~3명씩 한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배가 출발하기도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워서 잠을 청하는 듯했다.
제주까지 2시간 40분이 걸린다고 한다.
신기하다. 제주를 배로 가다니
배 아래칸에 차를 싣고 나와 여객선 객실로 들어가는 곳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출발 1시간 전부터 탑승이 시작된다.
들어오다 보니 자동차들이 즐비하다 어느 아주머니들이 말한다.
제주도에 자동차도 가지고 들어가나 봐 이거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은 전문가야 배터랑
나... 초보자인데 벌써 배터랑 전문가가 되어 버렸다. 아주머니 배터랑 아니어도 하실 수 있어요 저도 떨려요
배가 워낙 커서 인지 심하게 흔들린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날 조금 웅~하는 느낌과 소리가 들릴뿐 멀미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코로나 시기 중 3박 4일 가족여행을 갔었다. 그때 꽤 괜찮은 기억이었다.
제주. 이젠 조용히 그냥 혼자 한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쉼 없이, 지금은 흔해져 버린 육아휴직도 산전 후 휴가도 없이 달려온 내 삶에
이런 선물은 괜찮지 않을까?
누가 안 챙겨준다고 서운할 것도 없다.
내가 챙기면 된다.
늘 남 챙기는 일에 재미를 느끼다 뒤 돌아보니 스스로에게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통해 <나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보라는 얘길 핏대 높여가며 하면서도
정작 나에겐 너무나도 인색했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이 없는 곳에 처박혀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다렸지만
쉽게 그 10일이라는 시간이 도저히 나질 않았었다.
마침 부산에 강의 일정이 잡혔다.
그리고 마침 휴가 기간이었다.
다행이지 뭐야...
배의 객실은 조금 낯선 풍경이긴 했지만 2시간 40분을 타고 움직일만했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진도, 청산리, 완도, 울산, 부산을 돌았던 기억이 어른거린다.
휴가철이다 보니 밀리기도 하고 덥기도 했다.
아이들도 징징거리고 남편도 예민해져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지냈던 1주일 여행이었다.
벌써 15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제주도착^^
배로오니 여기가 인천인지 제주인지?
젊은 친구들이 줄 서있는 거 보니 여기 맛집이 분명하다.
후~~ 불어가며 해물라면 호로록 옛날 도시락도 냠냠
아 오늘의 첫끼, 식탐이 폭발했다.
맛. 나. 다
제주 가서 기껏 해물라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단호하게 답한다.
첫끼로 해물라면 먹은 건 죄가 아니잖아!!
맛있었으면 됐어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