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일 계획
1311호인데요
혹시 지금 룸서비스될까요?
오후 7시까지만 한다는 마감시간 30분 전
난 그렇게 진상 고객이 되어
식사를 부탁했다.
왕새우안심스테이크와 모둠과일
그리고 맥주 한잔이요
조금은 탐욕스러운 식탐이 느껴지는 집요하고
끈적한 목소리로 메뉴를 또박또박 읊었다.
마침 제주 가는 길 강의가 하나 있어
막 끝내고 근처 바닷가에 있는 호텔로 들어갔다.
하루 종일 떠들었더니 허기가 제대로 느껴졌다.
가족과 또는 같은 동료들과 근사한 식당에 가서 먹었던 기억만 있던
두툼한 스테이크가 갑작스럽게 먹고 싶었다.
한 30분 지나니 꽤 무겁고 큰 접시에
예상했던 대로 왕따시만 한 왕새우가 올려져 있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담겨 있었다.
안심스테이크가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먹을때 마다 작게 잘라 오물오물 먹는 여유라...
너무 낯설었다.
기억이 가물가물거린다.
늘 가족을 위해 같이 먹는 사람을 위해 배려한답시고
고기 덩어리를 미리 쓱싹쓱싹 잘라 두느라 바빴던 지난날이다.
고기 굽기도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바짝 잘도 구웠다.
무엇보다 먹을 때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이 없어 오롯이 음식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맛집을 찾아갈 만큼의 에너지가 없는 날
최대한 천천히 음식을 오물오물 씹고 싶은 날
이렇게 호젓한 룸서비스 참 좋다.
고기 조각을 한입 베어 물고 맥주 한 모금을 넣고
아래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도 재밌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어딜 가는 걸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서로 어떤 사이일까?
소설을 써보는 것도 재밌다.
여름날의 끝을 잡고
바닷가에서 가요제 행사가 있는지 리허설이 한창이다.
밥을 한 시간도 넘게 꼭꼭 씹어 먹었다.
어둑해지자 "안녕하세요 **가요제 사회를 맡은 뽀식이 이용식입니다." 하며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는 듯하다.
중간중간 흥겨운 노랫소리도 들렸다. 잠깐 바깥에 나가서 구경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끝무렵에는 가수 태진아의 노랫소리도 들린다.
옥경이를 부르는데 참 멋들어지게 부르신다.
그런데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옥경이를 들으며 깜빡 잠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하지 말 것 세 가질 정했다.
1. 화장하지 않기
2. 일 생각하지 않기
3. 계획 세우지 않기
그동안 붙잡고 있던 것들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 모두 내려놓고
그냥 나만 생각하기
나 위로하기
나 걱정하기
나 격려하기
나 하고 싶은 거 하기
그렇게 내 삶을 선택하기
참 아름다운 밤이다.
나 갑부인가?
유명한 코미디언과 가수의 재미있는 멘트와 노랠
침대에 누워서 듣다니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그렇게 첫날밤이 달콤하게 그리고 황홀하게 흘러간다.
우린 늘 여행하며 뭘 할까를 고민한다.
이번엔 절대 안 할 생각이다.
화장 그리고 일 그리고 계획
내일은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에 들어가요
모두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