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아 배려보다 중요한 건 예의다

존중받고 싶다면

by 준비된화살


심복(心服)

가장 친밀하게 모든 것을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믿을 만한 사람


그렇게 심복이라 생각했다가 실망과 배신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렇다고 <동료를 가슴 아프게 한 사람>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사실 인간의 속성을 간과하고 묻어둔 채 <맘대로 신뢰한 사람>에 초점을 맞춰 얘기하고 싶다.






어느 날 유치원 중간관리자인 A교사에게 전화가 왔다.

일상적인 인사를 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같이 일하던 후배 교사이야길 시작했다.


그 후배는 다른 사람에 비해 협력도 잘해주고 일 욕심도 있어 보였으며

무엇보다 몸을 사리지 않는 적극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중간관리자로서 모든 일에 배려해 주고 신경 써 주며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영감을 주기도 했다.

급격히 가까워져 언니 동생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런데 몇 달 후 갑자기 슬슬 피하는 눈치가 보이더니

몸이 아프다며 이렇다 저렇다 상의 한마디 없이

한 학기를 다 마치지도 않고 말도 없이 퇴사를 했다.


아무래도 마음이 가던 동료이다 보니 일도 더 꼼꼼히 알려주고

좋은 정보도 깨알같이 전달했건만...

순간 서운하다는 생각이 울컥 들었다. 하지만 아프다는데 어쩌겠나 싶었다.


그런 후 얼마 뒤 기가 막힌 말을 들었다.


"글쎄 다른 곳에 떡하니 가서 일하고 있는 겁니다. 참 믿었던 내가 바보지..."


그는 실의에 차 있었다.





B원장은 5년째 같이 근무하는 원감과 소통이 아주 잘되었다.

척하면 척이고 이걸 이야기해도 저걸 바로 알아듣는 시쳇말로 죽이 잘 맞는 관계가 되었다.

자연히 잘 맞는 둘의 관계는 미주알고주알 가정일이며,

어린이집 일과 사는 일상 등을 함께 의논하고 고민도 함께 나누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기의 모든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녀는

그 비밀과 권리를 등에 업고 원장의 단점을 은근슬쩍

동료들에게 전달하며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어갔다.

한술 더 떠서 전반적인 행정과 회계까지 간섭하며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며 흥분했다.


"내가 미쳤었지..."






속상한 속내를 비치며 울먹거리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직장 동료와 허물없이 마음을 나누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괜찮은 일일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 옳고 그름과 괜찮고 괜찮지 않고를 떠나

가능한 일일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직장 동료는 동네 이웃집의 언니 동생 또는 형으로 만난 사이가 아니다.

간혹 언니라고 부르거나 연배가 어리다고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이다.

서로 부르는 호칭은 의외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비교적 호칭에 보수적이다.)




직장에서는 아무리 친밀감이 있는 사이 일지라도

존칭 사용을 강력히 추천한다.


썜이 아니라 선생님, 주임쌤이 아니라 주임선생님 원장쌤이 아니라 원장선생님이 맞다.

여러 가지 수리를 위해 방문한 분도 아저씨가 아닌 기사님 또는 사장님으로 부른다.



존칭 사용 습관은 상대방을 제대로 존중해 줌과 동시에
말하는 사람의 품위도 격상시킨다.
그렇게 불린 사람은 더불어 존중의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격식에 맞는 호칭을 사용할 때

동료 간에는 적절한 거리감이 생긴다.

적절한 거리감은

심리적 사회적으로 예의를 갖추게 되는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게 된다.


예의를 갖추게 되면 그 관계는 건강하게 오래갈 수 있다.

그러니 동료와 가까운 친구 같은 친밀감보다는

예의를 가지고 적절한 거리감을 가지는 건 어떨까?


소중한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볼 때 더 빛난다.



체크포인트


직장에서는 존칭과 예의를 지키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첫걸음이야.
믿음은 소중하지만, 적절한 거리감이 있어야 오래가는 관계가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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