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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비 Mar 22. 2023

부자가 되고 싶다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54

#54 쉰네 번째 밤_부자가 되고 싶다


"아빠, 우리는 부자예요?"

"우리?"


"갑자기 그건 왜?"

"학교에서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어서요."


"집이나 차나 뭐 그런 거요?"

"아~, 벌써 그런 걸..."


"그럼 율이는 뭐라고 대답해?"

"저는 그냥 잘 모른다고 해요. 진짜 모르니까요."


"아빠가 어릴 때에도 그런 걸 물어보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아빠는 뭐라고 했어요?"


"아니라고 했지. 진짜 가난했으니까."


전도연과 하정우가 나오는 <멋진 하루>(2008)라는 영화가 있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빌려준 돈 350만 원을 받기 위해 일 년 만에 그를 찾아가는 '희수'와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다시 돈을 빌리는 '병운'의 (멋진) 하루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게 왜 궁금했는지 몰라. 다들 비슷비슷하게 가난했으면서."

"다 가난했어요?"


"그럼 가난했지. 가난했으니까 잘살고 못살고 그런 게 중요했던 거지."

"잘사는 친구는 없었어요?"


"몰라. 아빠 주변에는 없었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들 마음은 가난했던 것 같아. 물질적인 가난이 마음을 가난하게 만든 거겠지."


나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 영화를 떠올렸다. 머릿속으로 영화의 장면들을 더듬거렸다.


"율아, 아빠는 '주어진 것'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빠, 주어진 것이 뭐예요?"


"자기 힘으로 얻지 않은 것."

"자기 힘으로 얻지 않은 것이요?"


"엄마나 아빠의 돈은 네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너와 아무 상관없는 거야. 그냥 우연히 주어진 것일 뿐이잖아. 그런 건 자랑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아들, 굳이 묻고 싶다면 '우리'가 아니라 '아빠'는 부자예요?라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아빠는 부자예요?"


직장도 없고, 애인도 없고, 돈도 없는 '희수'와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이혼을 하고, 사업에도 실패한 떠돌이 신세의 '병운'. 이 두 사람은 모두 인생의 어려운 한 때를 지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조급한 '희수'와 달리 '병운'은 '희수'에게 돈을 갚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여유가 넘친다.


영화를 보며 '병운은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구나. 이 남자에게는 머지않아 더욱더 멋진 하루가 찾아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빠는 부자가 아니야. 아빠는 어릴 때 몸에 새겨진 구김이 너무 많아. 그래서 여유가 없."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지 하다가도 결국 내 몫을 먼저 챙기고 말아. 어릴 때 새겨진 구김은 쉽게 펼 수 없나 봐."

"그럼 여유가 있어야 부자인 거예요?"


"응.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여유가 없으면 가난한 사람인 거야. 아빠처럼."

"슬퍼요."


병운의 여유, 나는 이 여유가 너무 부럽다.


"괜찮아. 아빠는 부자가 아니지만 율이는 부자니까."

"제가요? 진짜요?"


"그럼. 진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경험이 많은 사람이니까."

"경험이요?"


"경험은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해 주고, 구김 없이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여유를 주니까."

"아빠, 고맙습니다."


"늦었을지 모르지만, 아빠는 이제라도 진짜 부자가 되고 싶어."

"그럼 저는 부자니까 제가 나눠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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