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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비 Feb 27. 2023

때가 왔다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53

#53 쉰세 번째 밤_때가 왔다


"아빠 조금만 놀다가 하면 안 돼요?"

"그래. 조금만 놀다가 해."


오늘따라 공부가 하기 싫지 아이는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한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여기며 잠시 기다린다. 10분, 20분, 30분. 아이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인내의 시간이 재깍재깍 흘러간다.


"아들, 이제 시작해야지."

"네, 아빠. 곧 갈게요."


책상에 엎드려 토마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읽다 아이의 방으로 가 기다림의 유효기간을 상기시킨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생각한다. 얼마만큼이면 적당한 것일까? 내게, 아이에게, 그리고 시간에게.


인내라는 감정에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어 생각을 단념한다. 시간이라는 관념은 사유의 파도가 너무 높아 생각이 길어지면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어렵다. 시간의 상대성은 분노를, 시간의 절대성 용서를 불러올 뿐이. 그러니 적당한 시간은 없다.


아이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열 살 소년의 권리 주장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다. 때가 온 건가?


"율아, 시간이 더 필요해?"

"조금만 더요."


"그래, 알았어. 준비되면 와."


아이가 자라면 자기주장을 하는 때가 온다. 타인이 들여다볼 수 없는 아주 비밀스러운, 생각의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유년이 소년이 되는 시기이며, 부모의 품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드디어 균형을 가르쳐야 할 때다.


"율아, 오른발은 '나'고 왼발은 '우리'야. 왼은 '책임'이고 오른은 '권리'야. 오른발은 '욕심'이고 왼발은 '노력'이야. 그러니까 오른발과 왼발은 사이좋게 함께 가야 해. 그러지 않으면 넘어지고 말아. 알겠니?"


때가 왔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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