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11 열한 번째 밤
#11 열한 번째 밤_물들어가야 한다면
“아빠는 어떤 색이 제일 좋아요?”
“율이는 어때? 어떤 색이 좋아?”
“저는 빨강이 제일 좋아요.”
“왜 빨간색이 좋아?”
“제일 강한 색이니까요.”
“빨강이 왜 제일 강한 색이야?”
“제일 선명하니까, 왠지 변하지 않는 색깔 같아서요. 그래서 멋져요. 아빠는 어때요?”
“아빠는 투명한 색이 좋아. 물색이나 유리색.”
“투명도 색이 될 수 있구나. 그런데 왜요? 아빠는 왜 투명색이 좋아요?”
“투명은 빨강처럼 자기 색깔이 선명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다른 색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비춰주잖아. 투명은 모든 색의 시작이고 어떤 색이든 될 수 있는 색이니까.”
나는 투명한 색을 좋아한다. 아무것에도 물들지 않아 어떤 색이든 함께 물들어버리는 투명색이 좋다. 그래서인지 모든 색이 섞여 칙칙하게 변해버린 검정색도 좋아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검정색은 투명색의 운명이다. 아무것에도 물들지 않은 투명색과 모든 것에 물들어버린 검정색, 이런 걸 극과 극은 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
“아빠는 네가 조금만 천천히 세상에 물들어 가면 좋겠어. 그리고 언젠가 세상에 완전히 물들어버렸을 때 너의 검은 빛을 사랑했으면 좋겠어. 있는 그대로의 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지금의 나는 무슨 색일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물들어가야만 한다면 내 몸 어딘가에 투명의 흔적은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