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샘비 Jul 22. 2023

베텔기우스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57

#57 쉰일곱 번째 밤_베텔기우스


아버지를 뵙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율아, 할아버지 많이 늙으셨지?"

"저는 처음부터 할아버지여서 잘 모르겠어요."


"그렇겠네. 기억하는 게 몇 년밖에 안 될 테니 율이에게는 영원히 할아버지겠네."


부쩍, 늙으셨다. 쌓여있는 약봉지, 느려진 몸짓, 행간이 길어진 말투. 늙음이란 누군가를 위해 미뤄둔 세월이 한꺼번에 쌓이는 것일까. 가속화된 시간 앞에서 나는 무력하다.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서먹서먹했던 부자 관계는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 만난다고 해도 그저 몇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며 같은 공기를 공유할 뿐 별다른 대화조차 없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폭력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비가 내리고 나는 말없이 빗길을 달린다. 오디오에서는 요즘 자주 듣는 <베텔기우스>(유우리, 2021)가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하루카 토오쿠 오와라나이 베테르기우스 다레카니 츠나구 마호'.


나직이 속삭인다. '아득히 먼 끝나지 않는 베텔기우스 누군가에게 이어지는 마법'.


"아빠, 이 노래 좋아요."

"아빠도 좋아. 가사가 참 좋아."


"저는 신나요."

"율아, 3년 전에 베텔기우스가 폭발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폭발했어요?"

"아니. 다행히도 아직까지 폭발하지 않았."


"폭발하면 어떻게 돼요? 지구는 괜찮아요?"

"모르지. 괜찮다고는 하던데."


"아빠는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율이는 지구를 걱정하는구나."

"왜 슬퍼요?"


"베텔기우스가 폭발한다는 건 죽는다는 거잖아. '별의 죽음' 말이야."

"별의 죽음."


"별도 하나의 생명인데 뭔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 마음이 좀 그."

"그래도 모든 생명은 다 죽잖아요."


"그렇지.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의 방향으로 걸어가야 하니까. 별도 사람도."

"별도 사람도."


"율아, 아빠는 말이야 우주의 한 공간을 채우고 있던 별이 어느 날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어둠만 남아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조금 많이 슬프더라. 아빠는 그런 게 슬퍼."


2020년이었던가 지구에서 640광년 떨어진 적색 초거성 베텔기우스의 폭발이 멀지 않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이상 현상이 관측되고 있으며, 폭발한다면 400년 만의 초신성 폭발이 될지도 모른다는. 지구는 괜찮을까? 과학자들의 호들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다시, 베텔기우스의 탄생과 죽음을 생각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놓인 아득한 시간을 생각한다. 아득한 시간의 밀도를 책임졌을 수없는 사건들을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아득한 시간을 건너 같은 방향을 향한다. 별도 사람도.


하지만 아직까지 베텔기우스는 폭발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아득한 시간도 아직 빛을 내며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밀도를 높일 시간이 남아있다.


"그래도 아직 폭발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아빠, 파이팅."

"뭘 파이팅?"


"그냥 파이팅이요."


아이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아빠와 할아버지의 어색한 관계를, 할아버지를 향한 아빠의 숨겨진 마음을.


불편한 감정이 사그라듦을 느낀다. 더 이상 관계를 되돌리기에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 변명하며 시간 뒤에 숨지는 않겠다. 시간이 없구나. 아니 아직 시간이 있구나.



아이를 재우고 서재에 앉아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을 읽는다.


"인간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죽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인간만이 죽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 노베르트 엘리아스, 김수정 역, <죽어가는 자의 고독>, 문학동네, 1998, 12쪽.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아마도 나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주위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대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그들과는 다른 생명체가 되어버린 자신에 익숙해져 가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문제는 죽음이 아니다. 죽음에 관한 덧없는 지식일 뿐이다.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자.'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도 꿈이 있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