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샘비 Aug 05. 2023

좋은 어린이, 좋은 어른, 좋은 할아버지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58

#58 쉰여덟 번째 밤_좋은 어린이, 좋은 어른, 좋은 할아버지


"율아, 오늘 혼내서 미안해. 너도 한다고 했을 텐데."

"아니에요. 제가 더 잘할게요."


"아빠가 조급했. 여유가 없어서, 그래서 그랬어."


이 조급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세상에서 사라질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 내내 서늘했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과 시선에 쫓겨 스스로를 소모하며 살았다. 꿈을 이루려 잠을 줄였고, 가족을 지탱하려 내내 분주했다. 팽팽한 줄이 끊어지면 일상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나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차츰 나는 작아졌다.


반성을 가장한 변명, 아니 자기 위로일 뿐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가기 위해 변명을 기록해 두지 않을 수는 없다.


"아빠가 혼내셔도 저는 아빠가 좋아요."


"아빠도 율이가 제일 좋아."

"저도 제가 제일 좋아요.^^"


뭉클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이 뜨겁다. 그만큼 얼굴도 뜨거워진다. 어느새 나만큼 몸집이 커진 아이를 힘껏 끌어안는다. 좋은 녀석이다.


"아빠는 율이가 좋은 어른이 으면 좋겠어. 그래서 자꾸만 그렇게... 아니야 너는 이미 좋은 어린이니까 좋은 어른이 될 거야."

"아빠도 이미 좋은 어른이에요."


"아니야. 아빠는 별로 좋은 어른이 아니야."


매일 밤 잠들기 전 나는 아이와 대화를 나눈다. 아이는 주로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나는 주로 나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나의 과거가 아이의 미래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이와 대화를 할 때마다 나는 삶의 다양한 국면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답을 찾으려 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도달하게 되는 아주 뻔한 깨달음, 그것이 삶의 테두리가 되어 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에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였다가, 여름에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였다가, 가을에는 '어찌 되었든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였다가, 겨울에는 '오늘의 결과는 어느 날 문득 찾아온다'였다가 다시 봄이 되면.


"율아, 저녁에 아빠가 혼낸 거 말이야.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 지금 말해주지 않으면 늦을지도 모른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지금은요?"


"잘못 생각했어."

"아니에요."


"아니야 미안해."

"이러니까 아빠는 이미 좋은 어른인 거예요. 코뿔소 노든처럼."


"<긴긴밤>(2021)에 나오는 코뿔소?"

"네. 할머니 코끼리가 노든에게 그러잖아요.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다고.'*"

*원래는 할머니가 하는 말이 아니라 코끼리 고아원에 남고 싶은 마음과 바깥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코뿔소 노든에게 다른 코끼리들이 하는 말이다.


"아빠, 좋은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노력해서 다음에 좋은 할아버지가 되면 돼요."

"알았어. 그럴게."


"율아, 그럼 너도 어느 날 아빠가 뿅 하고 사라지더라도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해."

"그럴 거예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나는 좋은 할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훌륭한 코뿔소 노든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베텔기우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