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0 밤이 오기 전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0 밤이 오기 전_글을 시작하며
저에게는 올해로 열 살이 된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는 날이 오더군요. 여덟 살 쯤이었던가요. 그때쯤 제가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은 바로 욕심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자주 바라고 원하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들, 끝없이 바라고 원해야 해.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것이기 때문이야. 바람이 멈추면 삶은 잠들고 말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네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꿈꾸는 한 작은 바람들이 계속 꿈틀거릴 테니까."
그때마다 아이는 묻더군요. 어린이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욕심은 나쁜 거라고 배웠다고 말이죠. 저는 세간의 가르침과 저의 믿음 사이에서 고민해야만 했습니다. 어찌 조심스럽지 않았겠습니까. 자신의 강요가 아이의 생각의 바탕이 되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물들이고, 그것이 어떠한 표상으로 새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결국 저는 유보적인 단서를 달아야만 했습니다.
"아들,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너의 욕심이 너를 집어삼키지는 않을 거야. 네가 바람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올바르다면 말이야. 의지와 욕심의 경계가 어디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욕심은 좋은 거야. 조금 늦더라도 바르게 바람을 이루어가면 좋겠어."
생각을 더듬어가면서 저는 의도나 결과가 아닌 과정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삶이라는 과정이 왜 정의로워야 하는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주의 광활함과 지구의 시간과 인류의 역사를 시야에 둘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과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아이의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질문들은 단순했지만 그만큼 강렬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배웠던 것들과 커가면서 알게 된 것들, 그리고 지금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내면에서 제각각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곱씹을수록 삶의 태도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할 수도, 지금의 믿음을 정답처럼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설사 그것이 상대화의 여지가 사라진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아이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믿음과 고민과 망설임의 흔적을 남기는 것뿐이었습니다. 결국 선택은 아이의 몫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