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_에어컨과 폴라포
"아들, 어서 와. 많이 덥지."
"아빠, 오늘 진짜 너무 더워요."
"장마 끝나니 계속 덥네. 오늘도 35도래."
"네. 내일도요. 작년보다 더 더운 거 같아요. 지구온난화 때문이죠?
"그렇겠지. 학교에서 지구온난화 배웠어?"
"네. 배웠어요."
"<WHY> 책에서는 원시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나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하던데 그럼 내년에는 더 더워지는 거예요?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이미 40도가 넘는 나라도 있으니까."
"저도 뉴스에서 봤어요. 인도는 50도 가까이 된다고 그러던데요."
"큰일이다. 매년 여름마다."
(...)
"아빠, 지구온난화는 정말 나아질 가능성이 없어요?
"<WHY> 책에서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했다면서?"
"그래도요."
"방법이 없지는 않지."
"무슨 방법이요?"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없애면 되겠지."
"어떻게요?"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거.^^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빠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방법이 없는 거네요."
"아마도. 그래도 지금보다 더 더워져서 정말로 견디기 어려워지면 사람들이 마음을 한데 모으지 않을까."
"마음을 한데..."
"그런데 어려울 거야. 사람의 마음만큼 복잡한 것도 없으니까."
"욕심 말이에요?"
"욕심은 욕심인데 사람마다 상황이 달라서 생기는 일이니까 무조건 비난하기는 어렵지. 그래서 방법이 없다는 거 아닐까."
"상황이요?"
"너는 집에 돌아오면 이렇게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면서 맛있는 폴라포도 먹을 수 있잖아.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그것도 욕심이야."
"율아, 넌 지구를 위해 에어컨과 폴라포를 포기하라면 할 수 있니?"
"그래야 하면 할 수는 있어요."
"그러면 맛있는 음식과 깨끗한 옷과 편안한 잠자리는 어때? 아니면 미래에 되고 싶은 꿈은 어때?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니?"
"관계가 있어요?"
"그럼 있지. 그래서 어려운 거야."
(...)
"율아, 세상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아. 그건 너도 이제 알지?
"네. 알아요."
"누군가는 필요 이상의 것을 누리지만 누군가는 살아남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니까. 굳이 가난하다거나 불행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하루하루를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
"라멕이랑 유니스*처럼 말이죠?"
*<굿네이버스 희망편지 쓰기>를 통해 알게 된 이름이다
"맞아. 그런 친구들에게 지구온난화를 위해 함께 마음을 모으자고 할 수는 없는 거야. 그 친구들에게는 더 소중한 일이 있으니까."
"어떤 일이요?"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는 일 같은 거."
"그래도 그 친구들도 지구에서 함께 살아야 하잖아요."
"그 말도 맞아. 그런데 말이야."
(...)
"율아, 아빠가 젊었을 때 일본어 공부하러 도쿄에서 잠시 산 적이 있었는데 같은 학교에 다니던 유럽 친구가 한국에 가본 적 있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 사람은 너무 돈을 밝힌다고 하더라고. 자기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래서요?"
"처음에는 기분도 나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일이 아니더라고."
"왜요?"
"그 친구의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 때문에 아등바등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니까."
"이유요?"
"역사 말이야. 그 친구는 다른 나라의 역사와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너도 누군가가 지구온난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지 않는다고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야."
"네, 아빠.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뭘 어쩌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일단 녹기 전에 폴라포는 어서 먹고 에어컨은 이만 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