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_온오프의 윤리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줄 때가 있다.
"다음 시간까지 **에 대해 자료 조사해 오세요."
"다음 시간까지 **에 대해 A4 2매 내외로 글을 써 오세요."
"다음 시간까지 **에 대해 PPT 발표 준비해 오세요."
"다음 시간까지 모둠 활동으로 5분 가량 영상을 찍어오세요."
"다음 시간까지 ** 자료를 읽고 토론 논제를 LMS에 올리세요."
이런저런 과제가 많다. 나는 과제를 제시할 때마다 고민을 한다. 고민거리는 두 가지이다. 첫째, 수업 이후 학생들의 시간을 빼앗아도 되는가. 둘째, 수업 이후 나의 시간을 빼앗겨도 괜찮은가. 어찌 보면 쓸데없는 고민 같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학생들은 요일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연락을 한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연락을 한다. 전화, 문자, 톡, 메일 등 다양한 매체로 연락을 한다. 한두 마디로 답할 수 있는 단순한 질문도 있고, 몇 마디로는 답할 수 없는 복잡한 질문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연락에 일일이 응답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귀찮다. 게다가 공지나 설명을 제대로 읽거나 듣지 않아서 연락이 오는 경우는 참 허탈하다. 스무 살이 넘은 아이들이 대체 왜 이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업무 외 시간에 오는 연락은 더욱 귀찮게 느껴진다. 이러저러한 작업을 하다 보면 시간이 늦을 수도 있다. 평일에 시간이 나지 않아 주말이 되어서야 중요한 질문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도 나의 오프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다.
반면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도 오프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과제라는 말로 학생들의 오프 시간을 침범해도 괜찮은가. 물론 학생이 일반 직장인과 다르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그들에게도 개인적인 일상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과제는 필요하다. 흔한 말로 수업의 연장이다. 과제를 통해 아이들은 계획을 수립하고, 내용을 생성하며, 내용을 적절한 방식으로 구성하고 표현해 보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지금 경험하지 않으면 늦을지도 모른다. 필요성과 시기가 온과 오프의 경계를 무너뜨릴 적절한 논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무너졌다.
결국 뻔한 결론이다. 과제가 수업의 연장이라면 나도 학생도 온의 상태를 함께 유지해야 한다. 학기 중에는 크고 작은 과제가 계속 이어진다. 매시간 자료를 찾아 읽어야 하고, 무언가를 표현해야 한다. 축적된 지식과 사고를 바탕으로 시험을 쳐야 한다. 사실상 끝이 없다. 수업의 연장이 어디까지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온과 오프를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스위치를 켰다면 자신의 스위치도 켜두어야 하지 않을까.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지키려는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온오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고민해야 할 부분도 많은 것 같다. 과연 일의 연장선은 어디까지인가. 우리가 가져야 할 온오프의 윤리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