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사건 이후로 교권 붕괴와 교사 인권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난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좀 그렇더라."
"뭐가?"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학교 다닐 때 만났던, 그런 교사들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되게 이상한 교사들 많았지."
"흔한 말로 선생님이 없었잖아. 다들 교실에서 절대권력자처럼 군림했지. 내 또래의 학부모들이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건 그런 경험 때문이지 않을까."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지 20일이 지났다.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 끔찍한 사건에 우리 모두는 분노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교사의 인권을 주장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한쪽으로 기울어 있던 시소가 갑자기 반대편으로 기울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교사의 힘이 여전히 더 세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자는 피교육자보다 힘이 세야 한다.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이지 힘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어찌 되었든 일반화의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 남지 않은 신뢰마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나쁜 학부모도 있고, 학생도 있고, 교사도 있다. 반면 좋은 교사도 있고, 학생도 있고, 학부모도 있다.
나는 초중고 12년 동안 만난 교사를 모두 기억한다. 하지만 떠올리고 싶은 얼굴은 두세 명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교사는 손독이 오르도록 어린 학생들의 뺨을 때렸으며, 어떤 교사는 눈에 띄지 않는 곳만 골라 매자국을 남겼다. 어떤 교사는 교실 바닥에 실례를 할 때까지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했고, 어떤 교사는 칠판을 제대로 닦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업 시간 내내 분필을 입게 물게 했다. 어떤 교사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웃는다고, 웃기지 않았다고, 서 있었다고, 앉아 있었다고, 아무런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인격 모독과 욕설 따위는 폭력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학교에는 선생님도 없었고, 학생도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건 교사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학생인권조례가 이러한 교사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당시의 나쁜 교사들은 교사로서의 윤리가 부재했던 것이 아니라 불법적인 폭력을 저질렀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학생 시절에도 믿지 않았던 교사를 학부모의 입장에서 믿기는 어렵다. 언제나 비판과 의심의 시선으로 교사를 바라본다.
물론 존경할 만한 교사가 없지는 않다. 나는 그 기준을 교사로서의 직업적 행위와 윤리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교문 밖에서 학생들과 등하교 인사를 주고받는 교장 선생님도 있고, 일 년이 지나도록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운 교장 선생님도 있다. 학생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함께 책을 출판하는 교사도 있고, 자신이 가르쳐야 할 것조차 학부모와 유튜브에 떠넘기는 교사도 있다. 교사로서의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교사도 있고, 직업적 행위조차 다하지 않는 교사도 있다.
기울어진 시소의 균형을 맞추기는 어렵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반대편으로 기울고 또다시 반대편으로 기울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고통을 겪고 상처를 입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정당한 희생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 누구도 누구를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를 희생이라 부르는 폭력을 경계해야 한다.
교권 회복을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를 폐기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개인의 일탈을 억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외면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문제의 원인을 없애면 된다. 원인의 원인을 없애면 된다. 그 원인의 원인을 없애면 된다. 학부모의 갑질이 문제라면 갑질의 원인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학부모가 생겨난 원인을 들여야 보아야 한다. 거기에는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가 내재해 있을 것이다.
답은 간단하지만 해결은 멀어 보인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한시간은 이미 지나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입장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