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샘비 Jun 22. 2024

내리는 비처럼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69

#예순아홉 번째 밤_내리는 비처럼


토요일 아침 비가 내린다. 오늘 야구는 우천취소가 되려나. 어제 다녀오길 잘했어.

똑똑, 추르륵, 촤아악. 내리는 비가 만들어 내는 소리는 다양하다.

귀를 기울이면 세상의 모든 언어가 담겨있는 듯하다. 듣고 싶은 대로 모든 소리가 들린다.


"율아, 아빠랑 엄마 중에 누가 더 엄격해?"

"엄격한 게 뭐예요?"


"엄격한 건... 뭐랄까?"


아내와 난 어제 야구장에서 본 아이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경직되어 있어'라고 안도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한숨을 내쉰다.

타인을, 정확히는 타인이 바라보는 자기 자신을 의식함에서 비롯되는 경직성.

'삼성의 김지찬 안타를 날려라. 삼성의 김지찬 찬찬찬 김지찬.' 흥겹게 춤을 추며 응원을 하는 또래들을 보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아내에게, 아내는 나에게 서로 아이를 엄격하게 키워서 그런 거라며 눈을 흘긴다.


"선과 도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학이네요."


"첫 번째는 선을 많이 긋는 것. 행동과 말과 생각의 선을 많이 긋는 거지."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 거요?"


"맞아. 그런 게 많은 거. 두 번째는 선이 만드는 도형이 좁은가 넓은가. 선을 긋다 보면 분명 삼각형이든 사각형이든 도형이 만들어질 거고 그 도형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어디로든 도망칠 때가 없으니 더 엄격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 번째는요?"


"세 번째는 선이 얼마나 진한가. 선이 진하면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테니까. 율이는 세 개 중에서 뭐가 제일 엄격한 거랑 맞는 거 같아?"

"아빠는요?"


"아빠가 먼저 말하는 것도 선을 긋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이번에는 율이 먼저."

"아빠는 한 번 뭐라고 하시면 무섭지만 매번 같은 걸로 뭐라 하시는 편이고, 엄마는 무섭지는 않지만 이것저것 뭐라 하시는 게 많고. 첫 번째, 두 번째는 엄마고, 세 번째는 아빠고."


"그래서 율아, 누가 더 엄격해?"


나는 한껏 기대를 했다. 나를 앞에 두고 아내를 뒤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의도는 항상 마지막에 있는 것이니 이건 내가 이긴 싸움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엄격함은 세 번째의 문제라는 것을.

선이 진하지 않다면 그게 무엇이든 뛰어넘어버리면 그만이다. 


"아빠, 지금 제가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아빠랑 엄마가 엄하게 키워서 그런 거예요."

"우와, 생각도 못했네. 우리 아들 많이 유연해졌는 걸. 멋지다."


빗소리가 포르테에서 피아노로 바뀌었다. 하루 종일 내리려나.

늦기 전에 '몽실이'랑 빗소리 들으며 산책이나 가야겠다.


아이 나이 열셋, 내 나이 마흔여섯.

나는 이제 유연함을 배워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덩크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