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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비 Sep 03. 2024

마치 첫사랑처럼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70

#일흔 번째 밤_마치 첫사랑처럼


"율아, 공룡 이름 기억나?"

"아니요, 모르겠어요."


"정말? 예전에는 공룡 이름 다 알았잖아. 테리지노 사우르스."

"아, 기억나요."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프다는 말을 이런 때 써도 되는 걸까. 아이의 '기억나요'라는 말에 난 깊고 깊은 감정의 심연으로 내려간다. 섭섭함과 슬픔과 공허함 그리고 언어의 집을 찾지 못한 날것의 감정들이 한 잔의 물에 뿌려진 물감처럼 번지고 엉킨다.


갱년기인가? 남자는 갱년기가 없으니 테스토스테론 결핍 증후군이라고 해야 하나. 뭐든 어쩌랴 그저 아이의 시간보다 나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을 뿐.


"오랜만에 고성 공룡엑스포 한 번 갈까?"

"..."


"가는 건 좋은데. 그냥 집에 있을래요."

"왜? 가기 싫어? 예전에는 '파키케팔로사우르스 박치기 공룡이라는 뜻' 그러면서 놀았잖아."


아이는 공룡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공룡박사가 되겠다는 아이를 좋아했다. 아이의 미래에 나의 미래를 덧대어 보며 흐뭇한 미소에 취하곤 했다.


아이와 함께 <슐라이히>에서 나온 공룡 피규어를 모으고, 공룡을 테마로 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고산골 공룡공원'에서 시작해 경남 고성과 전남 해남에 있는 공룡 박물관, 제주도에 있는 공룡랜드,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많은 자연사박물관. 일본에 갔을 땐 공룡 화석이 많은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을 찾기도 했다.


"싫지는 않은데, 멀어서요... 오늘은 집에서 공부하고, TV 보면서 쉴래요."

"그래, 알았어. 그러자."


나는 아직도 공룡의 이름을 기억한다.


덩치가 아주 큰 초식공룡인 브라키오사우르스와 아파토사우르스

꼬리곤봉이 매력적인 안킬로사우르스

육식공룡 삼대장인 티라노사우르스와 기가노토사우르스와 타르보사우르스

하늘을 나는 프테라노돈과 케찰코아틀루스

...


열세 살 아이는 공룡을 잊었다. 지금은 나 홀로 떠나버린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말로 잊어버리기엔 이름을 찾지 못한 몽글몽글한 느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는 자라고 우리의 교집합은 작아져만 간다. 아이의 꿈에 덧대어진 나의 미래를 거두어야 할 때다.


"아빠, 공룡엑스포 가요. 오랜만에 보고 싶어요."

"그래! 어서 준비해서 가자."


아직 시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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