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1 첫 번째 밤
#1 첫 번째 밤_바람은 바람일 뿐
“아빠는 어릴 적에 꿈이 뭐였어요?”
“아들, 미안한데 아빠는 어릴 때 그런 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왜요? 꿈이 없었어요?”
“응, 없었어.”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 어릴 적에도 미래를 꿈꾸지 않았고, 지금도 내일을 그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무엇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내게 너무 무겁다. 그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생활이면 충분하다고 여기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래서 딱 그만큼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앞으로도 무언가를 그리 욕망할 것 같지는 않다. 무언가를 바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자주 ‘욕심은 좋은 거야’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물론 좋아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글 쓰는 것을 참 좋아했다. 친구들과 뛰어놀다가도 자주 공상에 잠겼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쓰고 또 썼다. 생각이 경계 없이 무한히 번져나가는 게 참 좋았다. 연필과 종이만 있다면 어디까지라도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저 끼적이는 것이 좋았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변화시키는 이야기를 주로 썼던 것 같다. 후회였는지 아니면 억눌린 욕망이었는지 궁금하지만, 이제는 알 길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공상의 세계를 헤맨다. 고치지 못한 버릇이다.
어릴 적 살던 집에는 읽을 만한 책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겐 어린 시절에 누적되어야 할 지적 자산이 없다. 제대로 된 책 한 권 없던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다. 운명이란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못다 한 숙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간혹 하고는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다. 의도치 않게,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글을 읽고 쓰는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사실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어떤 글이든 그저 그렇다. 다만 무엇인가를 끼적이는 것이 좋을 뿐이다.
그래서 어릴 적 습관이 중요한가 보다. 이번 생은 틀렸다. 그래도 아쉬움은 없다. 오늘을 바꾸면 어제의 의미가 달라지고 미래가 새로워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아빠는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 다른 세상을 알지 못했어. 부끄럽지만 매번 정해진 것 중에서 가장 쉬운 것만 선택했던 것 같아.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선택지를 내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지금의 삶은 그저 내게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가장 쉬운 것만을 선택해 온 결과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듯 몇 가지 계기가 있기는 했다. 선생님과 선배, 그리고 친구.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뚜렷이 기억한다. 물론 이 역시 철 지난 해석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치기는 힘들다.
나이가 들면서 그래도 뭔가 그럴싸한 삶의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생의 숙제’ 라거나 ‘영혼의 과제’라고 생각하면 한 번쯤 죽을힘을 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삶이란 건 어차피 시간 때우기의 과정이다. 기왕이면 재미있고 조금은 의미 있는 걸음을 디뎌 보고 싶다. 어릴 적 일기장에 남아 있는 글처럼 언젠가 세상의 끝에 서 보고 싶다.
“그래도 율이는 언제나 아빠 편이에요.”
“그래, 아빠도 항상 율이 편이 되어줄게.”
어쩌겠는가. 바람은 바람일 뿐 생활에 불편함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