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을 쓰다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18 열여덟 번째 밤

by 샘비

#18 열여덟 번째 밤_이력을 쓰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


"글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율이는 어떤 사람이야?"


"음―. 아빠 아들이요."

"아빠도 그럼 율이 아빠."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간단히 정의하지 못한다. 그것은 주어진 환경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기도 하다. 사람은 순간순간 변하니까. 내일의 나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잘라내지 않고는 도통 방법이 없다.


더구나 자기 자신을 간명하게 정의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정의에 따른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정의하는 대신 삶의 이력을 기록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내 삶에 대한 해석은 내 몫이 아니다.


1979년 7월: 경주에서 태어났다. 빨래터, 둑길, 냇가, 개구리, 들개, 아카시아나무, 밤나무, 봉숭아꽃, 방직공장, 교회, 토끼농장을 생생히 기억한다. 여전히 그곳을 배경으로 한 꿈을 꾼다. 아마 나이가 더 들어도 그럴 것이다. 이런 게 운명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아서 영원히 바꿀 수도 없는, 그런.


1985년 11월: 그때까지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사를 했다. 골목이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동네였다. 지금도 간혹 아스팔트 포장 공사가 한창이던, 그날 그 골목이 떠오른다. 나는 여전히 미로를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1998년 3월: 대학에 입학했다. 마구잡이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나와 세상에 대한 짤막한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를 읽고, 서툴지만 때론 시를 쓰기도 했다.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한 끼의 밥보다 한 권의 시집이 주는 소중함을 배웠다. 지금도 몰래, 돌아앉아 끼적인다.


2004년 9월: 직업적 의식을 가지고 한국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공부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또한 어디로 향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 멈춰야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공부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공부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많이 위태로워 보였다. 자꾸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이 강박이 아이에게 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그리고 이 조심스러움이 또 다른 강박을 낳지는 않을까 두렵다. 사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일어났음을 직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2021년 12월: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시간의 흔적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특별한 순간들과 사람으로서 답해야 하는 보편적인 물음에 대해 쓰고 있다. 달이 외로워 보인다. 내일은 날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다 읽었어? 율아, 아빠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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