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더 넓게 사랑해야 한다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22 스물두 번째 밤

by 샘비

#22 스물두 번째 밤_세상을 더 넓게 사랑해야 한다


"아빠는 언제가 가장 슬퍼요?"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별일 없었어요."

"그러면?"


"똑같은 걸 보고 누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누구는 많이 슬프잖아요. 저랑 엄마랑 아빠랑 다 다르잖아요."


"그냥 그런 것 같아서요."

"우리 아들, 생각이 많아졌네."


나는 감정의 온도가 낮은 사람이었다. 잘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타인의 기쁨에도, 슬픔에도 무감한 편이었다. 흔한 말로 공감력이 부족했다. 내가 만든 감정의 방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공감을 표현하는 데 서툴지는 않았다. 함께 기뻐했고 슬퍼했고 때론 위로도 했고 분노도 했다. 하지만 나의 입을 통해 발신된 공감의 표현들은 대개가 학습의 결과였다. 나는 의식적으로 공감의 언어들을 사용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감정의 온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일이 많아졌고, 그와 함께 눈물도 많아졌다. 아이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지만, 나이 듦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나는 처음으로 감정과잉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빠는 요즘 사람들의 착한 행동을 볼 때 제일 슬퍼. 가슴이 아파."

"착한 행동이요?"


"아빠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누군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든지, 더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몫을 양보한다든지 하는 그런 모습 말이야."

"율이는 어때?"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타인의 감정에 쉽게 이입하고, 감정의 자가발전을 통해 끊임없이 또 다른 감정을 불러온다. 그러다 보면 마치 지상의 모든 슬픔이 내 것인 것만 같다.


때론 이런 내가 너무 낯설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조금 더 넓어졌고, 세상과의 벽이 조금 더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이 낯선 감각, 혹은 마흔넷의 눈물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방문을 연 것일까.


슬픔이든 기쁨이든 감정의 본질은 공감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공감은 세상과의 거리 좁히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감은 느낌이나 능력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다. 세상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온도로 살아가고 싶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가장 슬퍼요. 엄마, 아빠가 아프면 많이 슬플 것 같아요. 율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 맞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만 공감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세상을 더 넓게 사랑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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