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른들은 왜 답을 다 정해 놓고 물어봐요? 다른 걸 말하면 어차피 그건 안 된다고 말할 거면서."
"네 말이 맞아. 어른들이 잘못하는 거야. 아빠도 미안해."
"질문은 몰라서 물어보는 거 아니에요? 정답이 있으면 물어볼 필요가 없잖아요."
나는 아이에게 의도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것과 저것 중에서 뭐가 더 좋아?', '이렇게 해야 할까 저렇게 해야 할까?' 따위의 답이 정해진 질문. 동의 혹은 명령, 그 어느 언저리에 있는 그런 질문 말이다. 아이도 물론 답을 알고 있었다. 모른 척 자신의 욕망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입장에선 참 성가신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거나 강자의 욕망에 자신의 욕망을 일치시켜야 했을 테니. 돌아보면 경험하지 않아도 좋을, 사회생활(?)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그건 어른들만의 문제는 아니잖아. 율이도 하고 싶은 게 있거나 가지고 싶은 게 있을 때 그렇게 질문을 하잖아."
"그래도 저는 … 아니에요."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건 아닐까. 더구나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질문을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의문이 생겼을 때,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그리고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할 때 등등. 중요한 건 출구가 가로막힌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선택의 자유가 없는 질문은 더 이상 질문이 아닐 테니까.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심리는 대체 무엇일까?
나를 되돌아본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아이에게 나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진짜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의견이나 주장에는 이유가 필요하지만 동의에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여유가 없어서, 부담이 되어서, 피곤해서, 민망해서 그게 무엇이든 동의를 통해 이유를 감추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