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아무도 모르지. 죽어야만 알 수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죽음에도 어떤 질서가 있지 않을까."
"천국이나 지옥 같은 거 말이에요?"
"천국과 지옥은 아니더라도, 그것과 비슷한 어떤 영혼의 세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분명 정해진 약속 같은 게 있을 거라고 믿어."
"아니, 믿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오늘 하루를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을 테니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정말?"
"저도 열한 살이에요."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 끝은 죽음이다. 그러니 죽음은 내일처럼 가깝고,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만약 죽음에 원칙이 있다면, 이것이 첫 번째 원칙이지 않을까. 비록 죽음의 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삶의 시간은 불공평하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러한 불공평함조차도 아주 먼 훗날에나 알 수 있는, 어떤 약속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두 번째, 세 번째 원칙이 있으면 좋겠다. 기다림의 이유가 되어줄 테니. 이유가 있다면 기다림이 조금 더 쉽지 않을까.
"만약 죽음에 아무런 약속이 없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뒤죽박죽이 되지 않을까. 삶과 죽음은 이어져 있는 거니까."
"이어져 있는 거예요?"
"그럼. 삶의 끝이 죽음이라는 건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거니까."
"그러면사람은 꼭 죽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겠지.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죽음의 의미가 사라질 테고, 죽음의 의미가 사라지면 삶의 의미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산다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우리는 살아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되지 않을까.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스트럴드블럭'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아빠는 죽음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 물론 무섭기는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죽음은 우리의 삶에서 한순간도 떼어낼 수 없다. 삶의 유일한 이유이자 결과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의 존재를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나도 그렇다. 하긴 죽음에 옆자리를 내어준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그래도 오늘 하루는 죽음에 옆자리를 내어주고 싶다.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죽음이라는 거울에 비춰본다. 나는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