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마흔두 번째 밤_빛의 주인은 누구인가
"아빠, 저는 보석이 참 좋아요."
"그래! 어떤 보석이 좋아?"
"보석 중에서 빨간 루비가 제일 좋아요."
"우리 아드님은 언제나 빨강이 좋구나!"
"그런데 율아, 율이는 보석이 왜 좋아?"
"반짝이는 게 예뻐서요."
"율이는 반짝이는 게 예쁘구나."
아이와 함께 시내에 있는 보석가게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가게에 들어서자 빛을 머금은 듯 아이의 눈이 유난히 반짝였습니다.
빛나는 물질은 아름답습니다. 아니 아름답기 때문에 빛이 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보석을 빛나게 하는 것은 보석을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일 테니 말입니다. 저는 스스로 반짝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석의 빛은 바라보는 자의 몫이라 믿습니다.
"아빠, 보석은 왜 반짝여요?"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그래도 시간의 힘이라고 해야겠지."
"시간이요?"
"응. 시간. 시간은 마법 같아. 끝내 무엇이든 이루어내잖아."
보석은 시간의 결정입니다. 보석은 오랜 시간을 건너 본연의 색을 만듭니다. 시간의 흔적이 색으로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깃든 물건에는 빛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나 봅니다. 색을 품고서 빛을 부릅니다. 시간의 힘은 이토록 강합니다.
"그런데 율아 사람은 무슨 빛깔일까?"
"사람은 빛나지 않잖아요."
루비의 붉은빛을 떠올리며 사람의 빛깔을 생각합니다. 사람은 빛이 비칠 때 드러나는 고유한 색이 없는 것일까요? 사람에게는 빛을 유혹하는 마법과 같은 힘이 없는 것일까요? 사람은 세월을 건너 반짝일 수는 없는 것일까요? 그저 소멸해 가는 것일까요?
청춘조차 빛을 잃어버린 요즘의 세상을 향해 뭐라 소리쳐야 할까요?
청춘이라는 말은 모든 생명이 푸른빛을 띠는 봄철을 뜻합니다. 청춘이 빛나지 않는 것은 청춘의 푸름이 시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청춘을 바라보는 눈이 빛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청춘을 바라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야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래도 누군가 사람의 빛깔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요?"
"좋은 사람? 아빠도 잘 모르겠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이른 아침에 일어나 졸린 목소리로 ‘안녕’ 하고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고민하는 사람, 모든 면에 완벽한 사람보다 한 가지에 집요한 사람,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는 사람, 약속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기를 내어놓는 사람, 함께 울어주기보다 옆 사람을 위해 눈물을 양보하는 사람,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거짓말조차 하지 않아서 언제나 한결 같이 믿을 수 있는 사람, 듣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마법 같은 말을 하는 사람, 어떤 일에도 자신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타인의 삶을 자기 것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 속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사람을 믿는 사람 그리고 이런 사람이 되려고 마지막까지 노력하는 사람...
너무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이가 빛나는 사람보다 누군가에게 빛을 비춰주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빛을 매혹하는 색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건 아이의 몫일 테니까요. 다만 빛은 반짝이는 눈을 가진 자의 몫이라는 사실만은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