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숙제보다 더 어려운 숙제였으면 좋겠어
대화의 즐거움 #21
#21 아빠의 숙제보다 더 어려운 숙제였으면 좋겠어
"왜 잠이 안 와? 우리 아들 요즘 매일 늦게 자네."
"요즘 밤마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요. 무서운 생각이 들면 계속 긴장이 돼서 잠이 오지 않아요. 자다가도 자꾸 깨고 그래요."
"뭐가 무서운 거야?"
"집에 나쁜 사람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무섭기도 하고, 특히 귀신이 나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귀신?"
"제 친구들 중에는 귀신을 봤다는 친구도 있어요."
"정말이야? 율이는 귀신이 무서워?"
"네. 많이요. 아빠는 안 무서워요?"
"아빠는 귀신이 있다고 믿기는 한데 별로 무섭지는 않아."
"왜요?"
"아빠는 귀신이 나쁜 영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귀신에게 잘못한 것도 없고."
"<전설의 고향>이라고 아빠가 어릴 때 했던 귀신 나오는 드라마가 있거든, 드라마를 보면 귀신도, 귀신을 보는 사람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라고. 원한이 있거나 잘못을 했거나."
"율이는 귀신을 무서워해야 하는 이유가 있니?"
"아니요. 없어요."
"그러니까 괜찮아. 무서워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쉽지가 않아요."
"아빠는, 모든 사람은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하나씩 있는데 죽을 때까지 그 숙제를 다하면 다음 생에서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더 어려운 숙제를 하게 된다고 믿어."
"자기 숙제하기도 바쁠 텐데 귀신이 되어서 이승을 떠돌 이유가 있을까?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그럴까요?"
"제 숙제는 뭘까요?"
"모르지. 그래도 아빠의 숙제보다 더 어려운 숙제였으면 좋겠어."
"왜요?"
"아들이 아빠보다 더 좋은 사람이길 바라니까."
"아빠의 숙제는 뭐예요?"
"몰라. 나도 모르게 이미 다 했을 수도 있을 테고. 별로 궁금하지는 않아. 언젠가 알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