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벽을 어떻게 짊어질 것인가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51
#51 쉰한 번째 밤_이 벽을 어떻게 짊어질 것인가
1
늦은 겨울밤, 잠이 오지 않는다. 벌써 열흘째 잠을 설치고 있다. 심장에 손을 올리고 하릴없이 아이의 숨소리를 센다. 삼백쉰다섯, 삼백쉰여섯, 삼백쉰일곱, 삼백쉰여덟. 오늘따라 아이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도가 유난히 높다. 감기인가? 오늘도 불면의 밤이 깊어간다.
잠들기 전 아이와 나눈 대화의 잔영이 좀처럼 흩어지지 않는다. 깊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한 아이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눈이 내렸다.
"아빠, 그 형은 왜 그런 거예요?"
"왜냐하면... 그게 왜냐면 말이야."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왜요?"
"아직도 생각이 다 정리되지 않아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뭐가요?"
"그 아이의 마지막 선택이 '죽음'이었으니까. 그것을 '선택'이라 해도 될지 고민도 되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몇 개의 단어로 설명해도 될지 망설여지기도 하고,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네."
(...)
"율아, 아빠는 그 아이의 선택을 '존중'할 수도 '비난'할 수도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 어떻게 해야 할까?"
2
저녁을 먹으며 아이와 '꿈'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현실과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그만큼 꿈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적응하지 않기를, 타협하지 않기를 바란다.
"율이는 아직도 수의사 되는 게 꿈이야?"
"네."
"그래. 열심히 꿈꿔."
"꿈을 어떻게 열심히 꿔요?"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이지."
"아~."
"꿈을 꾼다는 건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을 쌓아가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꿈이 있다는 건 거짓말일 테고, 반대로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지금 노력의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면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테고."
아이가 자라면서 몇 번쯤 되풀이했을,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문득 아이가 물었다.
"그럼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꿈을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그럴 수도 있지. 노력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말이야.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시간을 실패의 시간이 아니라 최선의 시간으로 기억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렇기는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좋게 생각할 수는 없잖아요."
아이는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한 아이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그러한 연유였다.
"물론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 (...) 네 말이 맞아. 새로운 꿈을 찾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람도 있어."
3
나는 아이에게 세계 밖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세계 너머의 세계를 상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지금 이 세계에서 좌절하고 실패하더라도 훌훌 털고 일어나 또 다른 세계로 가볍게 여행을 떠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세상은 상상의 크기만큼 넓어. 지금은 집과 학교가 전부인 것 같겠지만, 집과 학교 밖에도 너를 위한 세상은 얼마든지 있어."
라고.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어 세상을 좁혀가지 않기를 바랐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 아이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예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세상을 살아갈 뿐이잖아. 그러니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이 최선의 결론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어려워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겠다. 다음에 좀 더 크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이런 이야기는 커다란 벽 같아. 부수지도 뛰어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는 벽 말이야."
"벽이요?"
"그래, 벽. 아주 두꺼운. 아빠는 이 벽을 어떻게 짊어져야 할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