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세상을 위하여

모는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48

by 샘비

#48 마흔여덟 번째 밤_단순한 세상을 위하여


"이건 왜 이렇게 복잡해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래, 복잡한 건 이해하기 어렵지. 꼬여버린 실타래처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기 어렵지."


"실타래요?"

"그래, 실타래. 잔뜩 엉켜있는."


아이는 장난감 조립 설명서를 한참 동안 읽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이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이럴 때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다지 자신은 없다.


"조립은 어렵지 않은데, 설명이 너무 복잡하다 그치? 조금만 쉽게 쓰면 율이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텐데."

"아빠, 왜 이렇게 설명이 복잡한 거예요?"


"글쎄다. 왜 그럴까? 설명이란 게 다 그렇지 않나?"

"그래도 완성했으니까 괜찮아요."


'어려운 질문'과 '복잡한 설명'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포기하지 않으려면, 결국 방법을 찾고 매듭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운 질문'에는 '단순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설명이 복잡해지는 것은 우리 발 밑의 현실이 너무 많은 '예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느냐'라는 아이의 질문에 나는 노력에 따른 대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답하고 싶다. 하지만 선뜻 그렇게 답하기는 어렵다. 미심쩍은 마음이 말끝을 흐리게 만든다. 그것은 노력과 대가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실에 관한 '변명'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노력에 따른 대가가 주어지는 현실과 그렇지 않은 현실이라는 구분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어떠한지, 그리고 노력과 대가가 비례하지 않는 현실은 왜 만들어졌는지, 그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아이에게 '바르게', '열심히' 따위의 평범한 진리(?)를 이야기할 수 있다. 아이가 무심히 던진 질문 앞에서 순간 아연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단순한 질문에 평범한 진리를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리고 그 바람을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을 생각한다. 나는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것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단 한 마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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