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이 지식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습관은
이후 삶에서는 재앙과도 같다.”
- 버트런드 러셀
모든 교사는 담당 과목이 있다. 내 경우는 ‘수학교육학’이다. 학생들이 내 과목에 흥미를 보이면 수업이 즐겁다. 학생이 보여주는 좋은 기운에 힘이 솟는다. 공부에 몰입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면 신이 난다. 이렇게 교사가 신이 나면 수업 준비에 더욱 공을 들이게 된다.
학생과 교사, 상호 의존적이다.
학생이 좋은 기운을 보내면 교사에게 좋은 기운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좋은 기운을 보내면 학생도 좋은 기운을 얻을 것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기운은 무엇일까?
‘교육은 삶’이라고 한 미국 교육학자 존 듀이는 틀리면 안 된다는 협박만 하지 않으면 학습은 즐거운 삶의 이름이 된다고 했다. 그는 교육은 경험의 재구성과 지속적 성장을 돕는 것이고, 학문은 성장을 도와줄 때 그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학생들이 내 전공에서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이 과목은 살아가는 데 필요할까요?”, “전공이 어려워서 공부하기 싫어요.”, “왜 배워야 해요?” 그때마다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하지만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당혹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는 학생은 자신 경험 속에서 느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학생의 말은 교사를 반성하게 한다. 수업을 되돌아보게 한다. 학생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학습 경험이 부족했을까? 내 과목을 학생 삶과 연결 짓는 노력이 부족했었나? 학생의 입장에서 의미 찾기에 실패한 수업이었을까? 진도 나가기에 급급했었나? 교사는 자신 수업을 복기해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학생에게 좋은 기운을 주면 상황이 좀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전달 내용이 많은 수업에서 학생은 자칫 흥미를 잃기 쉽다. 학습할 내용이 많을수록 교사-학생 모두 시간에 쫓기게 된다. 학생이 정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이 교실에서 흔히 일어난다. 교사는 학생보다 많이 알고 있기에, 더 많이 전달하려고 애쓴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부지불식중에 학생 스스로 생각할 기회나 그런 기회의 필요성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수업은 어땠을까? 반성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지식과 의미를 재구성해 나간다. 교사 역할은 학생이 지식을 재발견,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교실에서 학생은 적절한 몫의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는 학생이 할 일을 너무 지나치지도 않게,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만들어줘야 한다. 유명한 수학자 폴리아(G. Polya)의 말이다.
학생이 할 몫이 뭘까? 예습, 복습, 발표, 실험, 문제 해결, 토론, 생각해 보기, 질문하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요즘 학생 활동에서 배우는 내용에 대한 ‘의미 찾기’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현재 배우는 내용이 앞뒤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활동. 나아가 이 공부가 내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 수업에서 소홀히 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습의 의미 찾기.
내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기운은 ‘의미 찾기’가 실행될 때 저절로 피어오를 것 같다. 학생이 지금 하고 있는 공부의 의미. 그 의미가 살아날 때 흥미도 함께 생긴다고 생각한다. 수업 중 학생들이 겉돌고 있다고 느꼈던 수업을 되돌아보면, 학습의 의미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던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좋은 기운을 만들어주지 못했던 내 수업을 되돌아보게 된다.
21세기는 ‘지식 과잉’과 ‘무한 정보’의 시대다.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고』의 저자 박형주 교수는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얼마나 아는가?’가 덜 중요하다고 했다. 시대 변화를 읽고 새 지식을 흡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82쪽). 필요할 때 새로운 분야에 진입 가능한 정도의 소양을 갖추는 것이 필수가 된 시대다(92쪽). 우리가 과거에 배웠던 지식 전수형 교육에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의 훈련을 늘려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226쪽). 많은 양의 지식과 정보를 단순 습득하는 것은 수업이 아니어도 된다. 유튜브의 동영상이나 온라인 강좌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어느 책에서 신세대의 학습 특징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자기 삶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공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반면 가치와 흥미를 느낄 수 있고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의 능력을 무한히 발휘한다고 한다. 내 수업을 되돌아보게 된다.
학생과 함께 의미 찾기. 가치, 흥미, 성장…. 그동안 우리 교사들은 지식 교육에 급급한 나머지 학생의 정의적 측면을 소홀히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의미 찾기를 통해 관심과 흥미를 일깨울 필요가 있다. 현재 배움이 우리 삶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 이 공부가 내 삶에 유용한 지식이 될 거라는 확신, 공부 과정에서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 나아가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 학생의 가슴을 뛰게 하는 교육을 더 적극적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지금 배우는 내용이 앞뒤 맥락에서 (혹은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교육에서 교사도, 학생도 함께 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말해보기:
우리가 가르치는 과목에서 학생이 ‘이 과목은 왜 배워요?’라고 질문한다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저서 '교사라서 행복하세요?' 51쪽~58쪽에서.
(책을 쓴 계기를 작가가 직접 설명하는 영상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세요 ->)